경험이 바라보는 것을 결정짓는다. 특히 그래픽과 상징적 요소는 더욱 그렇다. 경험이 바라보는 것을 결정짓는다. 특히 그래픽과 상징적 요소는 더욱 그렇다. 최근 프로젝트를 통해 10세 미만 아이들과 60~70대 어르신들을 각각 인터뷰했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는 얼마나 진땀을 흘렸던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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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룹을 비교하게 된 것은 현재 프로젝트 제품의 마케팅, 디자인 시장에서 메인 타깃으로 삼는 연령대 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주요 고객은 아니더라도 제품을 함께 사용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동일한 형태에 대한 반응이었다. 여러 가지 시안 중 60~70대 그룹에서는 직선 형태를 보고 추상적인 것과 나름대로 연결을 지었고, 내 머릿속으로 세운 가설대로 예상된 대답을 했다. 반면 어린이들은 앞서 60~70대가 선택한 직선 형태의 시안을 후보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떤 어린이는 “직선은 땅 같다” 말하기도 했다. 두 대답의 차이에서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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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은 경험의 축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와 같이 조금 더 형태가 있는 것이나 오감으로 경험했던 것은 어린이들이 연상하기 쉬웠다. 하지만 “사과는 빨개, 빨가면 열정”이라고 하는 순간 아이들은 “네? 뭐라고요?”라고 반응한다. 결과적으로 묘사와 상징 중 어린이들은 사실적 묘사에 더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르신들은 경우에 따라 달랐지만 상징에 대해 확실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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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기간
사용자의 경험으로 쌓아온 것들을 통해
사용자는 경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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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멘탈 모델 mental model과 디자인의 상관관계가 다시 한번 주효해진다. 오랜 기간사용자의 경험으로 쌓아온 것들을 통해 사용자는 경험한다. 경험이 경험을 만드는 셈이다. 이건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 시각으로 관람하는 예술작품이나, 직접 만져서 사용하는 제품이나, 공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가 최근에 읽은 인상 깊은 책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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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는 사람 또한 보이지 않는 사람의 생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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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눈앞에 두고 있는 컵을 시라토리 씨는 머릿속에서 같은 크기, 색, 형태로 재현하지 못한다. 그는 전혀 다른 상상력을 써서 컵을 '본다'.이 말을 뒤집어보면 '눈이 보이는 사람' 또한 시라토리 씨가 '보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가다>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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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나온 시라토리 씨는 태어났을 때부터 빛과 사물을 희미하게 감지하는 정도였고 중학교 때부터 완전히 전맹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는 형태와, 색감 등에 대해 정안인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어떤 형태의 컵을 생각할 때 그 형태의 윤곽과 색감, 소재, 컵이 놓여있는 배경은 눈이 보이는 사람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시라토리 씨가 '보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앞서 시라토리 씨는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앞을 보지 못했는데, 중도에 시각장애를 갖게 된 분들은 어떻게 연상할까? 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과 함께 전시관에도 가보고, 달리기를함께 하면서 한강과 남산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도 있다. 늦가을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 남산을 뛰면서 나에게 풍경이 멋지지 않냐고 전맹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물어보시기에, 꽤 자세하게 묘사해서 풍경을 전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분은 중도 실명이어서 나름대로 색과 풍경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계셨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풍경을 경험하고 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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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디지털 경험 연구를 위해 10~20대에 전맹 시각장애인이 된 분들과 50대 후반에 중도 실명하여 현재는 전맹인 60대 분을 만났는데, 선호도에 차이를 발견했다. 윈도우와 안드로이드는 파일 시스템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중도 실명한 선생님은 안드로이드 폰을 선호한다고 했다. 폴더 간 파일 이동 방식이나, 전송 방식이 기존에 쓰던 컴퓨터처럼 익숙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에서 파일을 옮길 때 안드로이드는 그냥 컴퓨터에 꽂아서 USB 파일 이동하듯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전맹인 사용자들은 대부분 iOS를 선호했다. 보이스오버 기능을 포함한 손쉬운 사용 기능이 이미 잘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 기간 iOS의 인터페이스가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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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선택에는 그동안 쌓아온 삶의 무게만큼의 경험이 담겨 있다. 그래서 디자인이란 뭐랄까 기존에 사용자가 만들어 가고 있는 ‘경험이라는 집’에 벽돌을 한층 한층 쌓아주는 것이 되기도 하고, 이전에 쌓지 않았던 영역에 새로운 경험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 깊이와 넓이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곧 사람을 이해하며 함께 가는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생각하는 어떤 컵처럼, 비록 완전히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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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곧 사람을 이해하며 함께 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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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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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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