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F 의 전신인 중국내지선교회CIM는 1865년 허드슨 테일러가 설립했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가 60대 후반에 접어들며 병환으로 스위스에서 요양을 해야하자, 그의 뒤를 이어 중국내지선교회의 2대 총재를 맡을 사람이 필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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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부터 1901년사이에 일어났던 중국 의화단 사건으로 중국 전역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중국 선교를 어떻게 지속해 나갈 수 있을것인가는 당시 중국내지선교회가 직면한 중요한 화두였다. 중국 의화단 사건은 청나라 말기, 외세에 반대하던 민중 비밀결사 ‘의화단’이 봉기하여 서양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배척한 사건으로, 중국내지선교회 소속 선교사 58명과 자녀 21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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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허드슨테일러의 대리로 역할을 수행하던 스티븐슨 선교사가 있었으나, D.H. 허스트가 2대 총재로 결정되었는데 내부적으로도 놀라운 결정이었다. D.H. 허스트는 그 유명한 *캠브리지 세븐Cambridge Seven의 한 명으로 20대에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중국내지선교에 헌신했던 사람이다. 당시 2대 총재로 추대되었을 때 15년간의 선교 사역을 진행하며 인정받고 있었으나 나이는 서른 아홉에 불과했고, 말 수가 적고 조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화단 사건 이후 1902년부터 1931년까지 30년간 중국내지선교회를 이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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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캠브리지 대학 출신으로 촉망받던 일곱 명의 청년이 부유하고 안정된 미래를 내려놓고 중국내지선교에 뛰어들면서 영국사회 전역을 놀라게 했다. 당시 청나라식 복장을 한 캠브리지 세븐, 뒷줄 가운데가 D.H. 허스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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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허드슨테일러의 뒤를 이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 한 문장이 가장 잘 설명해준다.
“그는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 자신은 잊히는 삶을 살았다.”
“He lived to be forgotten so that Christ might be remembered”
허드슨 테일러와 캠브리지 세븐에 대한 이야기는 선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들어봤을만 하지만, D.H 호스트라는 이름은 거의 들어본적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지도자였고, 기도의 깊은 영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1000여명의 중국내지선교회 선교사들과 자녀들을 위해 늘 기도하던 그는, 방안에서 걸어다니면서도 기도했던 모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는 동료 사역자를 초청하여 함께 기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뛰어난 행정가도 아니고 카리스마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깊은 영성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허드슨테일러의 뒤를 이어 중국내지선교회를 충실하게 이끌 수 있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지만 무명을 위해 살아가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은 잊혀지는 삶. 이것은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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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기도편지를 한 통 받았다. 무슬림을 섬기고 계신 한 선교사님의 긴급 기도편지였다. 편지의 말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무명한 자, 000
'무명한 자'라는 그 한마디가 새삼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는 무명한자인가? 내 깊은 내면의 자리에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분명히 살아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은 그 깃털 같은 욕망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잘 알고 계실까. 크리스천으로 세상의 복을 받고 평탄하게 이 땅에서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왔다.
한 청년은 안정되고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왔지만, 기독교 박해가 심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2년간 언어를 익혔고, 몇 달 전 그 나라의 국경지역으로 이동하여 체류 중이다. 이 청년과 기독교 박해가 심한 이 나라는 대륙도 다르고,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기꺼이 인생을 바쳐 그곳에 갔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단한 사역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사역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씨를 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밭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단지 본인은 '밭에 놓인 돌 한 개를 옮기는 정도의 수준이지 않을까?'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간다고 말한다.
한 선교사님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책을 쓰지 않는다고 하셨다. 혹시나 자신이 주목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일이 있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만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말이 생생하다. 그분이 운영하고 있는 NGO는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면 손에 꼽힐만한 나라이자 무슬림, 힌두인들이 가득하고, 기독교인은 0.2% 남짓인 나라다. 선교사님은 NGO를 운영하시는데 학교와 고아원을 운영하며 수천 명의 아이들과 학생들을 섬기고 있고, 현지인 직원도 150명이 넘는다. 한국에 잘 알려지시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항상 채워진다. 무려 35년 넘게 현장을 지키고 계신 분이다. 선교사님은 1980년대 후반 이 나라에 들어가시기 전 이런 각오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평생을 화장실 청소만 하며 살아도 좋습니다.”
이들은 이 땅에 어떤 영광도, 어떤 안정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이들의 관심은 오직 하늘에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배우고 또 배운다. 뉴스만 보면 돈과 집값과 관련된 맘몬의 언어가 가득한 세상이지만, 이들은 오직 영원한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드러나길 어떤 방식으로든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뿐이다. 이들은 진정 무명한 자이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자들일 것이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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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의 평화를 위해 I 캄보디아 선교사님들을 통해 캄보디아 국경 지역의 상황이 국내에서 보기보다 심각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개입하셔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지켜주시고, 캄보디아가 태국, 베트남 등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기를 그리고 이 과정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 26년 7월 파송을 위해 I 7월에 있는 싱가포르 OMF 국제본부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선교지로 나갈 수 있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5월까지 재정 승인 단계가 통과되고 필요한 준비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 협력 교회 및 기관을 위해 I 장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교회 및 기관과 연결될 수 있기를
- 가정을 위해 I 가정이 늘 작은 천국이 되어, 선교지의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공동체 되도록
- 자녀를 위해 I 하빈이의 현지 학교 입학을 위해 지원서류를 작성하고, 1월 중으로 서류를 제출하는데 하빈이가 가장 행복하게 선교지에서 생활할 수 있는 학교와 만남을 예비하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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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전예진 선교사가 소속된 한국오엠에프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는 국내 최초의 국제 선교단체로 1980년에 시작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파송된 1,400여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동아시아 19개 필드에서 ‘동아시아의 신속한 복음화’를 위하여 사역 중에 있습니다. 오엠에프의 시작은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1865년 6월 25일 설립한 중국 내지 선교회CIM(China Inland Mission)이며,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중국 본토 선교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1954년 해외 선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동아시아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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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하실 일을 이뤄가기 원하는
김병수, 전예진 선교사의 사역명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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