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느 누구를 써서도 일하실 수 있는 분인데, 내가 뭐라고 교만을 떨고 있다는 것을요. 그 ‘누구’가 내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도 모자랄 판에 교만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하나님, 저를 보내주세요,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바꾸게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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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모태신앙이지만 사실 유아세례를 받지는 못했어요. 제가 뱃속에 있을 당시에 아버지는 교회를 가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4살 정도일까요? 어렴풋이 아버지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경책을 사시면서 “이걸 샀으니 이제 교회를 열심히 다니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후로 부모님을 따라 여름휴가 대신 욕지도와 지리산으로 의료선교를 가기도 했고, 원종수 권사님의 간증 테이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혼자 반복해서 듣기도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예요. 당시 중등부 전도사님께서는 매 주일 설교마다 “너희 부모님 신앙으로 구원받는 것 아니다. 너희가 직접 말씀읽고 기도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어요. 혼자 무슨 뜻인지도 이해못하면서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1년이 되도록 전도사님은 같은 말씀을 하셨지만 교회 친구들 중에서 기도하고 말씀읽는 것은 저 뿐이었어요. 예배 때 기도하고 성경 읽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는데 저만 손을 들더라구요. 그 때 홀로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며 사춘기의 어지러웠던 마음이 평안해졌고, 예수님을 믿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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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난 후의 신앙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에서 노방전도를 받아 작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대학생들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노방전도를 하는 교회였어요. 그곳에서 하나님을 다시 뜨겁게 만났는데요. 목사님의 성추행 사건들이 발각되어 교회가 분열되게 되었어요. 몇 년을 분노에 사로잡혀 지냈어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물었지만 답을 알 수 없었어요. 어느 교회에 가도 말씀이 들리지 않았고요. 그러다 2009년에 학교 선배를 통해 가게된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잠시였지만 훈련받으며 다시 하나님을 만났어요. 저의 죄에 대해 더 깊이 회개하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변하니 교회를 떠나 10년간 매일같이 교회와 목사님들을 욕하던 아버지도, 신은 없다고 논쟁하던 오빠도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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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과에서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디자이너가 되고싶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어린 마음에 사람이 사는 이유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 준비를 할 수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일반 인문대에 들어갔고요. ‘하나님, 제가 돈 벌어서 학비를 낼테니 미대에 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지 딱 10년 뒤에야 디자인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비량 선교사로써 어느 곳에 있든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하고 나니 미대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린거예요. 낼 학비도 없으면서 금식기도를 하고 일단 지원을 했는데 학교에 붙고나니 ‘제품디자인’이라는 학과가 무얼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는거에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기로 했는데, 하나님, 이 분야에서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을까요?” 라고 기도하던 중에 출애굽기 35:30-35의 성막일꾼 말씀이 눈에 들어오게 하셨어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35:30-35)
영어성경을 찾아보니 디자인design을 하며 다른 디자이너들을 가르친다고 쓰여있었어요. 학비도 여전히 문제였는데, 크리스천인 친구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입학금으로 보태쓰라며 갑자기 100만원을 보내주셨어요. 그 덕분에 반대하던 어머니의 마음이 변해 입학을 허락해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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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에서 장막을 짓는 생업을 하며 바울과 동역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같은 직업과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될 거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같은 과 동기로 남편을 만났어요. 교제를 시작할 때도 전도서 9:9에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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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입사가 거의 결정되었던 마지막 학기에 청년부 미션트립으로 타지키스탄을 다녀왔어요. 그때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제가 이 회사에서 도대체 뭘 해야할까요?” 라고 묻고 있었어요. 선교멤버로 처음 만난 언니는 제가 삼성전자에 입사하는지 무엇이 전공인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저를 위해 기도를 하다 본 환상을 말해주었어요.
“두 길이 있는데 그 길 끝에는 큰 건물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것이 보여. 크고 좋은 건물이야. 그런데 영적으로 좋은 곳은 아니야. 반대로 다른 길 끝에는 큰 십자가가 보여. 그런데 그 길은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아.”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회사를 떠올렸어요. 그런데 당장 다른 십자가의 길은 보이지 않으니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길로 가게 될 거라는 예감이 있었어요.
회사에 입사한 후에는 선교는 커녕 교회를 나가기도 어려웠어요. 주 7일을 야근하며 근무하다가 회사에서 기절한 적도 있어요. 실제로 그 시기에 다른 부서에서 과로로 죽은 직원도 있었어요.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서 휴직을 했어요. 휴직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온갖 나라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을 만나게 하셨어요. 유학준비를 위해 딱 한달 갔던 영어학원에는 뒷자리에 케냐 선교사님이 계셨고, 남편이 진로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한 다음날 시각장애인 가이드러너 봉사를 하러갔다가 시에라리온, 중국, 말레이시아 선교사님들을 만나게 되고요. 그 외에도 이집트, 방글라데시 선교사님과도 계속 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휴직기간 동안 교회에서 평신도선교훈련을 참여하기도 했어요. 이것도 간증인데, 저는 계속 선교에 대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선교훈련을 받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할 일도 많은데 무슨 선교훈련이냐며 단칼에 거절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먼저 선교훈련을 받자고 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교회 셔틀버스에서 만난 분이 선교훈련을 받으라고 권하시는 거예요. 덕분에 남편의 마음이 바뀌어서 선교훈련을 받게 되요. 훈련 마지막은 단기선교에 참여하는 것이었거든요. 이것도 남편은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또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으로,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방글라데시 교육선교 팀장이었던 권사님을 만나서 밀려밀려 선교준비모임까지 가게 되요. 선교모임에 갔더니 권사님께서 선교 멤버가 다 차지 않아서 기도하고 있었더니 하나님께서 ‘오늘 사람들이 채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희가 왔다는 거예요. 선교를 안갈 수가 없었죠. 저는 막상 선교 준비 기간 중에 임신이 되어서 선교기간 내내 입덧으로 고생하며 누워있었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이 단기선교 중에 선교에 대한 마음을 강하게 받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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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타지키스탄 미션트립에서 기도하던 숙소의 부엌 창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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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아이를 낳고 영국 유학을 가면서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많이 체험했어요.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고 돈도 부족하니 남편만 석사를 하고 나는 안하겠다. 함께 방글라데시에 갔던 권사님을 통해 말씀해달라’ 라고 기도했더니 평소 연락하지 않던 권사님께 전화가 와서 공부를 하라고 권하셨어요. 영어학원에서 만났던 케냐 선교사님께서 유학생활에 보태 쓰라며 갑자기 100만원을 보내주시기도 하고요. 디자인학교에 들어갈 때 친구 어머니께서 마중물로 100만원을 주셨던 것 처럼요.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남편과 “우린 이러다 언제 부르시면 선교를 가게 될지도 몰라”라는 대화를 하곤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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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솔직히 아이를 키우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졌어요. 남편이 창업을 하면서 홀로 육아와 일과 가족부양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고요. 다행히 회사에선 평안을 주셨기에 “나에겐 이제 아무 꿈도 없고 회사 다니며 남편과 아이가 잘 지내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회사의 평안이 오래가지 않더라고요. 힘들었던 남편의 창업이 안정이 되어가고, 버거웠던 육아가 조금 수월해지니 저의 회사생활이 힘들어졌어요. 나름대로 성과를 내며 성실하게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관계에서 어려움이 찾아왔어요. 나에게 우상되었던 회사를 하나님께서 치신 것 같았어요. 어느 순간 제가 부흥회에서 “십자가의 길로 가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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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남편은 꾸준히 선교기도모임에 참석하더니 방글라데시 선교단체의 법인이사가 되었어요. 쉴 때마다 선교사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선교와 관련된 책을 읽더니 급기야는 쭉 후원해왔던 OMF에 선교 관심자 등록을 하더라고요? 남편이 갑자기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더라구요. 하나님께 ‘보내시려거든 보내세요’라고 영혼없이 기도를 하다가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어요. 하나님은 어느 누구를 써서도 일하실 수 있는 분인데, 내가 뭐라고 교만을 떨고 있다는 것을요. 그 ‘누구’가 내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도 모자랄 판에 교만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하나님, 저를 보내주세요,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바꾸게 됐어요. 회사를 벗어나고 싶어서 회사 밖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는데, 그 모든게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하나님께서 먹고 사는 모든 것을 해결하신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죽음 앞에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밖에 없다는 답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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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도에 캄보디아 단기 선교를 다녀오면서 진정으로 가고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4일간 가르치는 일정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예진아, 선교는 이렇게 행복한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캄보디아를 다녀온 후, 하나님께서 이사야 말씀을 주셨어요.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이사야 61:4)” 하나님께서 주신 성막일꾼의 사명으로, 무너지고 황폐해진 곳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가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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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국민의 3분의 1이 살해당하는 킬링필드로 인해 산업이 개발되지 못한 곳이에요.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죽임을 당했고, 책은 불살라졌어요. 여전히 국립도서관에서조차 책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아이들이 될 수 있는 좋은 직업이 선생님밖에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전문인으로서 이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선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다못해 ‘캄보디아 여행’을 검색하면 한국 남자들이 발마사지를 해주는 캄보디아 여성들을 상대로 성적인 요구를 한다는 블로그 후기도 나와요. 캄보디아 시각장애인들이 건전한 업소에서 안마사로 일할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을까? 이들이 학교 교육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크메르어로 된 책을 만들고 도서관을 세워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캄보디아에서 생산한 공예품 등을 디자인을 통해 감각적으로 브랜딩하고 해외로 판매할 수는 없을까? 이런 단편적인 아이디어들은 있지만, 어떤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지는 살아보고 필요를 직접 느껴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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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나를 위해 살려고 했던 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빚으시고 연단시키시며 하나님의 길로 준비시키고 이끌어오셨는지가 보입니다. 가려져 있던 십자가의 길을 10년이 지난 후에야 보여주시며 부르고 계십니다. 너무 부족한 저를 부르셔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서기가 너무나도 두렵고 떨리지만, 저같은 사람도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혜일 수밖에 없구나 다시 느끼게 됩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4)” 말씀에 의지하여 부족한 저를 통해 앞으로 이뤄가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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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예진
출애굽기 35:30-35에 나오는 성막 일꾼 브살렐과 오흘리압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며 살아가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이사야61:4)"라는 말씀대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사명을 다하고자 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UCL에서 아트&디자인 교육 M.A.Art&Design in Education을 전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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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전예진 선교사가소속된 한국오엠에프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는 국내 최초의 국제 선교단체로 1980년에 시작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파송된 1,400여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동아시아 19개 필드에서 ‘동아시아의 신속한 복음화’를 위하여 사역 중에 있습니다. 오엠에프의 시작은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1865년 6월 25일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IM(China Inland Mission)이며, 1949년 중국 공산화이후 중국 본토 선교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1954년 해외선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동아시아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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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웍스BeautifulWorks는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하실 일을 이뤄가기 원하는
김병수, 전예진 선교사의 사역명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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