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캄보디아 단기선교. 아내는 내가 이 시간처럼 행복해보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로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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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지난 20년간 나에게 주신 레마의 말씀인 베드로전서 1장 7절의 말씀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대로 빚어오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교라는 그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의 여정 앞에나는 다시 이 말씀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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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언제 인격적으로 만났나요?
스무 살 때였어요. 저는 당시에 재수생이었고, 공부한답시고 2년 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았죠. 제 결정이었어요. 심지어 부모님께 공부에 집중해야 하니 기숙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만큼 공부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예요. 하지만 저는 굉장히 예민하고 작은 주변 현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어요. 염려가 아주 많았고요. 고3 때 수험표를 나눠주시는데 수험표가 땅에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 현상을 보고, 저는 그다음 날 수능시험에서 떨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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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재수를 하게 됐고, 부모님은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이 초조하게 공부하는 것이 안타까우셨는지 일요일 아침만큼은 집 앞에 있는 교회라도 나가라고 하셨죠. 그게 오륜교회였습니다. 저는 공부하러 가야 하니까 일요일 첫 예배를 드리려고 아무 생각없이 2년만에 교회를 찾았어요. 그때 성령님의 강한 임재를 느꼈습니다. 2층 본당을 향해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멀리 들려오는 찬양 소리가 제 심장부터 온몸을 울리기 시작했고, 본당 문이 열려있는 데 따스한 손길이 저를 감싸더라고요.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저를 감싸 안으셨던 거였죠. 그날 김은호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베드로전서 1장 6절~7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였는데, 저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한창 예민할 시기라 엄마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저는 펑펑 울면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결국 제가 다시 주님을 만나게 하시려고 먼 길을 돌게 하셨다는 걸 알았죠. 저는 그때부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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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꾼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경제학과에 들어갔지만 그건 순전히 수능시험 점수에 맞춘 결정이었어요. 학교생활은 재미있었지만, 이대로 살아가면 남들이 누구나 생각하는 루트를 따라 마케팅을 하거나 회사원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비전을 위해 기도하던 중 교회에 특강을 오신 한 교수님이 자신의 마음의 소명을 놓고 기도할 때 어떤 울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원래 패션에도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멋진 것들을 좋아했었거든요. 디자인을 하면 너무 행복하겠다는 마음의 강한 울림이 있었고, 그래서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꿔 새로운 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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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림은 잘 못 그리거든요. 하지만아이디어 를 잘 냈고, 비즈니스와 접목한 저만의 아이디어를 통해 최종 합격했어요. 저는 인턴으로, 아내는 삼성디자인 멤버십을 통해 같이 입사하게 됐습니 다. 삼성에서의 생활은 낮과 밤이 없는 생활이었어요. 새벽 1시, 2시에 퇴근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일요일도 출근했고요. 하지만 제 실력과 관점을 엄청나게 끌어올리는 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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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냉장고, 청소기 등 가전제품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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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빴을 텐데, 선교 훈련은 어떻게 받게 되셨나요?
요새 주 40시간 근무하거나 법적으로 최대 52시간이잖아요? 당시에는 주말도 없이 주당 6~70시간씩 거의 꾸준하게 3년 넘게 일하면서 많이 지쳤었어요. 그래서 아내와 회사를 쉬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했어요. 준비를 위해 1년 정도 휴직을 했죠. 그러면서 공부를 하는데 아내가 오륜교회의 선교 훈련(LMTC)을 받자고 하는 거예요. 평신도 대상 과정이었고, 매주 저녁마다 반년간 진행되는 거였죠. 저는 유학이랑 실리콘 밸리 이직 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단칼에 거절했는데, 주변에 어떤 권사님도 권유를 하셔서 마지못해 참석해 보기로 했죠. 그런데 인생의 완전한 변화가 그때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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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를 다녀오셨잖아요? 어떤 점들을 느끼셨어요?
선교 훈련의 마지막 미션은 단기 선교였어요. 그래서 2016년 정익모, 박금란 선교사님이 사역하시는 방글라데시 치타공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사역이었고 고아원 아이들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지구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가 폭탄을 맞은 것처럼 건물이 무너져 있거나, 짓다만 건물들이 난잡하게 있었고 세계에서 가장 힘든 노동이라 불리는 폐선박 철거를 하는 지역은 정말 위험해 보였습니다. 몇몇 거주지는 진짜 판자촌이었고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먹는 정수기 물은 누런색이었어요. 그냥 충격이었죠. 난 대체 어떤 세계에서 살아온 것인가? 돌아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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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단기 선교는 내 인생을 완전하게 바꾼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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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유럽으로 이민을 가서 스튜디오를 차린 후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야겠다는게 제 꿈이었어 요. 그런데 선교 이후 저는 ‘빚진 자debtor’의 심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방글라데시나 북한에 있는 친구들 대신 이 편안한 한국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누리며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본인들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어찌보면 나를 대신해서열악한 환경에 있어요. 심지어 예수님의 이름도 듣지 못했다면 너무 출발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들이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나만을 위해서 쌓아가는 인생을 산다면 예수님께서는 제게 뭐라고 하실까요? 그래서 저를 위해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항상 향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당시 해외 디자인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저는 사회적기업가정신 Social Entrepreneurship이라는 학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선교적 비즈니스 Business as Mission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이걸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을 창업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선교적 활동의 최선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세자금을 모두 빼들고 당시 6개월된 아기와 함께 온가족이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육아휴직 중이었던 아내는 이후 다시 회사로 복귀했고, 저는 목표대로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돌아왔을 때 저희 통장에는 한 200만원 정도 있었습니다. 집도 없고, 8~9평정도 되는 월셋집에서 다시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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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고려한 비즈니스는 그럼 그때부터 준비하신 건가요?
원래 푸드테크 Foodtech에 관심이 많아서 프로틴 관련 사업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거나, 영국에서 만났던 지인들과 함께 개발도상국 항생제 오남용 문제를 해결하는 뭔가를 만들어 보려고도 했었어요. 그런데 모든 길이 이상하게 다 막혔어요. 최상이라 생각했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비즈니스에 대해 계속 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정확하게 말씀으로 제게 알려 주셨습니다. “너는 잔치를 벌이려거든 앞 못 보는 자와 못 걷는 자를 위해 하라”라는누가복음 14장의 말씀이었어요. 두 번이나 동일하게 말씀을 주셔서 확신했죠. 2011년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한 발달장애인 청년을 지나치는 데 성령께서 강하게 “저들은 어떻게 복음을 들을 수 있을까?” 라는 마음을 주셨던 적이 있고, 그 뒤로 시각장애인 마라톤 가이드 러너로 봉사활동을 했었거든요. 이미 마음은 있었죠. 그런데 어떻게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장애인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비즈니스라. 고용을 해야 하나? 실제 몇 번 고용해 본 적도 있지만 지속가능성이 부족했어요. 여러모로 힘들었죠. 사업 초기에 특히 코로나 시기를 지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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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금 창업한지 6년이 되셨는데, 잘 살아남으셨네요?
하나님은 웨이메이커 Waymaker이시라는 것을 제가 걸어온 길을 통해 크게 깨닫게 됐습니다. 현재 비즈니스는 장애인, 어르신 등 소외되어 있던 사용자의 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을 분석하고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거나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에요. 일종의 디자인 관점의 컨설팅이라 할 수 있죠. 그러면서 포용적인 디자인과 관련된 전시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고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는데,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던졌더니 지금 이 디자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거의 저희 회사가 유일한 거예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인, 포용 적인 디자인에서 저희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지게 됐죠. 그래서 많은 글로벌 기업들과 프로젝트를 하고 저도 강연도 많이 다니고, 굉장히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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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교사는 왜 되시려는거에요? 선한 목적의 사업을 한국에서 계속 하셔도 되는 것 아녜요?
한국은 이미 저 말고도 장애인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괜찮은 사회가 되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 못 걷는 자, 더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는 마음을 끊임없이 주셨고, 선교지에 있는 많은 곳은 장애인 일자리나 학교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시선을 따라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는 전문인 선교를 하고자 해요. 목회가 아니라요. 그래서 디자인이라는 제 달란트를 계속해서 사용할 예정입니다. 선교지에 가서도 장애인을 고려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디자인을 많은 대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현지의 문제를 저보다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들이거든요. 이들의 잠재력을 깨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그 땅 가운데 이뤄가는 사람들로 세워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저희 회사를 놓고 기도할 때 항상 선교의 통로가 되는 기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든요. 회사 이름도 미션잇missionit 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it 을 향해 달려가는 미션 mission을 가진 회사예요. 그래서 선교지에서 이 회사를 통해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일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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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주식회사 미션잇을 창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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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Exit 입니다. 현지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들고 나오는 거죠. 저의 역할은 보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교사님들 다큐멘터리를 자주 봐요. 130년 전 한국에 오셨던 선교사님의 5대손이 아직도 한국에서 선교를 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한국은 이미 자립했기 때문에 선교사님들이 떠나시고, 이제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됐죠. 제가 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거나 사회적기업가정신을 가르쳐서 학생들을 세워가는 일을 하게 될지, 비즈니스를 통해 현지 장애인이나 소외계층을 고용하는 일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제가 필요 없어질만큼 실력과 영성을 갖춘 사람들을 세워가는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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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픔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아픔이 있는 영혼들이 있는 곳이요. 저는 그들의 아픔 가운데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캄보디아 땅은 킬링필드의 아픔이 있는 곳입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죽임을 당했고요. 베트남이나 태국과 같은 나라에 비해 약소국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산업이 태동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저희와 같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선교사들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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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장애인 고용창출에도 관심이 많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성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콜링Calling을 찾고, 그 콜링을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라 믿습니다. 2024년 단기 방문으로 캄보디아에 갔을 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술집에서 일해야만 했던 한 소녀 가장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일하지 않고 소녀를 일터로 내몬 부모의 책임도 컸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직업으로 안내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의 장애인 평균 고용률은 비장애인 대비 낮더라도 장애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내 장애인 고용률에 대한 공식 통계는 찾기 어려웠지만, 캄보디아나 방글라데시에서 장애인이 직업을 갖기까지의 장벽이 훨씬 더 크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촉각·후각·소리에 민감합니다. 귀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시각적 요소에 뛰어난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달란트를 주셨고, 장애를 가진 이들도 자신들만의 역량을 개발해 자립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지의 상황에 맞게 장애인의 역량을 개발하고, 직업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액셀러레이터이자 코치로서, 캄보디아의 현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스타트업이 현지에서 성장하도록 청년들을 세우는 일에도 힘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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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캄보디아 단기 선교를 다녀오며, 영혼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임만호, 김용순 선교사님께 팀원들이 박수를 다 같이 보내는 데 천국에서 치는 박수 같았어요. 그 자리에 참 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만이 천국에서 박수받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썩어질 땅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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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동역자 분들에게 전할 한마디가 있다면요?
저는 그저 깨어진 벽돌 한 조각일 뿐입니다. 벽돌은 하나만 있을 때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옆에 있는 벽돌이 서로 쌓이고 지지해 줄 때 각자의 모양이 다르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성벽이 됩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성전을 함께 쌓아 갈 많은 이웃 벽돌들이 필요합니다. 제 깨어진 모양을 채워 함께 단단한 성벽을 이루어갈 동역자들,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저희의 부르심의 여정에 함께 동참해 주셔서 가난한고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기쁨을 함께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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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병수 "너는 가난한 자와 못걷는자와 앞못보는자와 저는 자를 위해 잔치를 벌이라" 누가복음 14장 13절 말씀에 순종하여 장애인 접근성Accessibility와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을 연구하는 주식회사 미션잇을 2020년 설립했다. 하나님 마음이 있는 더 소외된 곳으로 가기 위해 2026년 7월 캄보디아에 평신도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준비중이다. 그에게 선교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이자 행동하는 신앙이다. 마치 예수님을 믿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가난하고 아픈 영혼들이 있는 곳으로 아버지 마음을 품고 걸음을 내딛는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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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전예진 선교사가소속된 한국오엠에프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는 국내 최초의 국제 선교단체로 1980년에 시작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파송된 1,400여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동아시아 19개 필드에서 ‘동아시아의 신속한 복음화’를 위하여 사역 중에 있습니다. 오엠에프의 시작은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1865년 6월 25일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IM(China Inland Mission)이며, 1949년 중국 공산화이후 중국 본토 선교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1954년 해외선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동아시아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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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웍스BeautifulWorks는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하실 일을 이뤄가기 원하는
김병수, 전예진 선교사의 사역명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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