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디자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에는 요즘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디자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에는 상당한 역설이 숨어 있다. 어떤 전문가도 제품과 서비스의 타깃을 뾰족하게 좁히라고 하지, 처음부터 폭넓게 펼치라고 하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것은 곧 타깃 없이 방황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실제 어떤 의미인가? 여기에는 ‘경험’ 또는 ‘접근’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다시 말해 모두의 경험을 위한 디자인 또는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특정 사용자의 취향을 고려한 조형, 색감, 언어는 차별화돼야 한다. 그러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얻는 경험과 접근에 관련해서는 특별한 안전상의 이유가 아닌 이상 누구도 배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경험은 시작과 중간 끝, 그리고 이후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밀한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각 단계에서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접근 가능한 범위와 수준은 공평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신체적, 정신적 조건이 각기 다른 개인들에게 최적의 경험을 전달하고자하는 디자인이다. 추상적인 외침이 아니라 그동안 소외돼 온 사용자들이 개발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 중심의 방법론이자 지향점이다.
김병수,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휴머니스트, 2025), p.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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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와 미션잇의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책을 준비해왔고, 1년 반의 시간을 거쳐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이라는 이름으로 발간하게 됐습니다. 처음 이 분야에 발을 내딛으며 느꼈던 주변의 관심도는 사실 냉랭한 것이었습니다. 접근성은 공간의 영역에서 중요한 주제임에도, 코로나가 막 일어나던 시기에 공간 접근성은 어찌보면 금기시 되는 것과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근래에 들어 접근성이나 포용적 디자인에 대해 사회에서 점차 더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저희가 걷는 길이 좁은 길이지만 올바른 방향이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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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점Standard|제품과 서비스의 기준 다시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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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위해 우리는 우선 기준점Standard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공간의 기준이 지금까지 어떻게 설정되어 왔는지를 다시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의 독자 분들이라면 1호에서 나온 전상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아실겁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앉아서 생활하시는데, 보편적으로 제작된 정수기 그리고 냉장고는 서 있는 사람을 위한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사용에 제약이 있습니다. 또는 놀이터의 기준은 어떠한가요? 두 발로 뛰어다닐 수 있는 아이들을 고려하여 만들어집니다. 뮤지엄의 기준 역시 많은 경우 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편향되어왔던 기준을 다시 보는 것이 모든 기획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배제되었던 사람은 없는지 사용자를 보는 것입니다. 제품을 만들 때 한 손으로 사용하는 사람들, 혹은 양 손을 사용하는 데 제약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제품을 쓸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여기서부터 디자인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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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공간은 서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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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Hidden|모든 것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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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점은 접근성을 눈에 보이는 물리적 요소로만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계단, 턱, 이동 폭, 점자 등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보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왔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눈에 보이는 장애나 제약에만 주목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ADHD, 공황장애, 난독증, 트라우마 등 겉으로 보기에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장애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요? 저는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이런 숨겨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고려하는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경험을 뜻하기도 합니다. 물리적 장벽보다 심리적 장벽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다 하더라도 환대받지 못하는 공간에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경험, 연결감과 환대를 디자인해야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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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사례로 자주 언급하는 헬싱키 오디 도서관의 선언문은, 이용자로 하여금 편안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Samu E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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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participation l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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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형 디자인은 미션잇에서 진행해온 모든 프로젝트에서 쓰이는 중요한 방법론 입니다. 저는 특히 경험의 격차Experience gap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결국 사용자를 위한 창작이기 때문입니다.
경험의 격차란 디자이너와 사용자 사이에서 생겨나는 간극을 말합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할 때 격차가 생깁니다. 감각에 의존하는 정도가 다르다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시각 정보에 크게 의존하는 사람과 청각 정보에 의존하는 사람은 같은 공간을 이용하더라도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참여형 과정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보편적으로 논의되어 온 디자인이 대부분 결과물 중심이었다면 포용적 디자인은 과정 중심의 디자인입니다. 과정 자체를 설계하는 것부터가 디자인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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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와 사용자 사이에는 경험의 격차가 존재하고 그것을 줄이는 것이 디자인의 중요한 목표다. ©미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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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Common|다름 속에서 발견하는 공통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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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란, 각자가 따로 사용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어르신과 청년 세대가 공간을 단절된 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또 앱을 설계할 때 어르신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네이티브와 베이비부머 세대 사이에 단절이 깊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애 아동만을 위한 놀이터를 만든다면, ‘장애’와 ‘비장애’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통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디자인이 아닌 가장 평범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것도 디자인의 중요한 방향성임을 다시 한번 알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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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유무와 관계 없이 어떤 어린이나 좋아하는 것은 올라가기, 숨기다. 특별한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 ©미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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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권Option과 자유의지Freewill|포용적 설계의 궁극적 목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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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디자인을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선택권과 자유의지라는 권리가 사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철학적 논의라기보다 독립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일하고 싶고, 참여하고 싶고,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자 하는 의지를 뜻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스스로 일을 하는 즐거움이 포용적 디자인입니다. 제가 자주 사례로 드는 시각장애인 건축가 크리스도우니의 말을 빌리자면 접근성 디자인은 누군가의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긍정적 행위이자,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기쁨에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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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과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고려할 때 디자인은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으로 봐야한다. ©미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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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지금까지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두드러져왔습니다. 그러나 접근성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디자인은 완성된 산물이 아니라 연속된 과정입니다.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는 꾸준함, 그 자체가 디자인이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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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장애, 접근성과 관련된 디자인을 한다고 할 때 주변에서 하는 말은 “밥값은 벌어먹고 살겠니?”였습니다. 스스로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던 시간과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버티는 시간이 몇 년 됐습니다. 2021년에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 모임에서 다섯 글자로 서로의 삶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의 다섯 글자는 “살려주소서”였습니다.
하지만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1호의 서두에 적었듯이 누군가는 금전적인 것을 우선시하지 않더라도 콜링Calling에 따른 신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접근성에 대한 관심이나 이런 포용적 디자인에 대해 사회에서 점차 더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저희가 걸어온 길이 정말 좁은 길이지만 맞는 방향이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첫 책인 만큼 필력이나 내용에 있어 미흡한 면도 수두룩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생각한 가치가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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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5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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