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과 함께 모든가방Modeun Gabang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일이었어요. 사실 ‘미술관’이라고 서울시립미술관과 함께 모든가방Modeun Gabang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일이었어요. 사실 ‘미술관’이라고 하면 도서관처럼 지역사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장애 당사자들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미술관에 들어가자마자 동선을 생각해야 하고, 일부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갑자기 어두워지거나 소음이 있는 공간,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망설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 여겨졌던 미술관이지만 '접근성’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여전히 생각을 바꾸고 세심한 연결이 필요한 곳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올해는 전국의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접근성’을 키워드로 하는 전시 공간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죠. 반가운 변화임은 분명합니다. 동시에 아쉽고, 조금 더 나아갔으면 하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뮤지엄 접근성이 화두가 되는 이 시점에, 뮤지엄 접근성에 관한 생각할 거리, 새로운 생각을 담은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키워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8호 주제는 <뮤지엄:포용적 뮤지엄의 요소들>으로, 7호와 동시에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 인터뷰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 속에서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제작이 진행중인 MSV소셜임팩트 8호 <뮤지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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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모든가방Moden Gabang ©서울시립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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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번 7번째 시리즈 준비 소식을 전해주신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동시에 8호도 준비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뮤지엄’으로 주제를 선정했다고 하셨는데 주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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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ㅣMSV 8호 <뮤지엄>은 지난 MSV 6호 <도서관>을 만들면서 시작된 생각으로 정하게 된 주제예요. <도서관>호를 만들면서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사회에 주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특수교사 선생님들께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 지적 능력이나 신체적 제약이 있는 분들, 그리고 재정적 능력과 관계 없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지역사회의 공간을 뽑으면 ‘도서관‘이라고 볼 수 있겠더라고요. 다양한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죠. <도서관>호를 만들면서 특히 도서관이 현재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앞으로 이를 잘 지키기 위한 포용적 도서관의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생각해 봤던 것같아요.
그와 비슷한 공간이 뮤지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실 뮤지엄은 공간 자체가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에서 봤을 때 최상위 수준의 욕구, ‘자아실현’을 충족해 주는 것 같은 공간이잖아요. 하지만 뮤지엄이야말로 실제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는 공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상황에 관계없이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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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하ㅣ최근에 뮤지엄에서 접근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실제로 기획 전시도 많이 생기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접근성을 생각했을 때 수어 통역 제공이나음성 해설 제공 등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우선 물리적으로 지원해 주는 형태의 접근성을 많이 고려하고 있거든요. 저희는 그것보다는 더 넓은 차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장애가 있으신 분들에게 뮤지엄이 어렵지 않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장애 당사자분들이 내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내 자리가 있는 공간인지, 내가 그 공간에 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뮤지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예술을 가까이서 경험하는 시간이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작이 되면 좋겠다는 각오로 <뮤지엄>호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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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 중 최상위 수준의 욕구에는 '자아실현'이 있다 ©corporate finance institu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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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는 주제일 것 같아요. 현재까지 진행된 인터뷰 중에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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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하ㅣ두 분의 인터뷰가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먼저, 카르멘 파팔리아Carmen Papalia님은 스스로를 비시각적 예술가non-visual artist라고 표현하시면서 (시각)장애와 접근성을 둘러싼 작업을 하신 분으로, 각각의 작업도 너무 흥미롭지만 특히 기관들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뮤지엄이 장애 예술가들과 일하거나 그들의 작업을 뮤지엄에서 전시하려고 할 때, 그 과정에서 접근성의 문제를 꼭 고려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미술관은 원래도 그런 일에 익숙한 곳이잖아요!”라고 말하셨거든요. 사실 미술관은 작품이나 전시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이너들과 협업하고, 전문가를 초빙해 자문을 받고 하는 일들을 늘 해오던 일이라는 의미죠.
예를 들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사용될 특정한 사탕이나 구슬을 지정했고, 자기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작품을 어떻게 설치하고 보존할지 기관에 알아내라고 요구했대요. 작가나 디자이너의 요구를 잘 수용하는 것이 뮤지엄의 역할이고 그 생각의 연장선에서, 장애 예술가에게 필요한 조치들도 미술관이 충분히 고민할 수 있지 않냐는 요지였어요. 저는 이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장애인도 예술을 만들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윤리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예술가가 좋은 작업을 만들기 위해서, 또 미술관에서 그것을 관람객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장애 접근성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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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파팔리아Carmen Papalia ©Mackenzie Art Galle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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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파팔리아 Carmen Papalia의 작업물 Mobility Device ©Carmen Papal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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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 톰슨Hannah Thompson님은 영국의 시각장애 연구자시고, 특히 창의적 음성 해설Creative Audio Description과 다감각 뮤지엄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계세요. 이분은 원래는 불문학 연구를 하시다가 뮤지엄 접근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대요. 불문학과 뮤지엄,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이 흥미로운 궤적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의 힌트를 “인간은 2000년 전부터 문학을 통해 훌륭한 창의적 음성 해설을 만들어왔다”라는 말에서 얻었습니다. 옛날에는 사진이 없었으니까, 예술 작품을 설명하려면 무조건 말이나 글로 해야 했잖아요. 그런 기록들이 문학 작품에 많이 남아 있고, 오늘날의 글들에도 예술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고요. 그게 일종의 음성해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거죠.
또한 그런 설명이 앞이 안 보이는 누군가를 위해 특별하게 제공되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중요하게 짚으셨어요. 뮤지엄에서는 보통 시각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생각하고 음성 해설을 작성하지만, 사실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방식으로 쓰인 음성해설은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고 흥미로울 수 있잖아요. 단순히 시각 장애인을 위해 따로 제공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결국 모두를 위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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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대 고고학·인류학박물관 15세기 페루 항아리 (다감각 뮤지엄 프로젝트) ©Charlotte Sl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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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ㅣ“뮤지엄이라는 공간이 어떤 곳인가?”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흔히 관람의 영역에서만 생각하곤 해요. 미술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조금은 고급스러운 문화생활의 차원으로 바라보는 거죠. 그런데 한 청각장애 당사자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평소 구두로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모임에 잘 가지 않게 되는데,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어떤 그라운드ground’가 필요하다고요. 그리고 그곳이 바로 미술관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단지 문화생활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지혜를 얻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마치 제가 <도서관>호를 제작할 때, 도서관이 ‘지역사회의 청소년들에게 편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같은 큰 울림이 있는 인터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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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8호 <뮤지엄>호를 통해 독자들이 어떤 지적인 경험, 생각의 확장을 하길 바라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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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하ㅣ여러가지 기대하는 바가 있지만, 우선 각자의 자리에서 접근성에 대해 고민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 공간들을 잘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비록 갈 길이 한참 남았지만, 여하간 지금의 노력이 쌓이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뮤지엄에서 일하거나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이들 읽으실 텐데, 서로 반가워하고 참조할 만한 이야기를 책에서 발견하시면 좋겠어요. ‘다른 곳들에선 이런 걸 하고 있구나’, ‘이렇게 했구나’, ‘우리도 비슷한 걸 해봤는데’하는 것들이요.
두 번째는, ‘다음’을 상상하고 싶은 것인데요. 요새 한국에서 접근성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접근성을 특정 대상을 위한 편의 제공 정도로 고려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 어떻게 넘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책에 접근성을 정체성 중심이 아니라 감각이나 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실으려고 하고 있거든요. 접근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거나 접근성의 개념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사실 그냥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그동안 예술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다른 엔트리 포인트를 가지고 들어와서 뮤지엄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각 인터뷰이들의 개성도 강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들도 많거든요. 미술관, 박물관에 한 번쯤 가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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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ㅣ앞서 인상 깊은 인터뷰에서 이야기했지만, 미술관은 예술품을 감상하는 공간에만 머무는 곳은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삶의 지혜를 얻는 곳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공간이 지닌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기도 하죠. 시각장애인 선생님과 박물관을 함께 방문했을 때도 그랬어요. 시각으로 사물을 보지는 못하시지만, 공간의 분위기와 자세히 전해지는 설명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이런 기회가 흔치 않으니 얼마나 소중한가?’ 하면서요.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것들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전해졌어요. 제가 바로 옆에서 보조하면서도 그 점을 더 크게 느꼈고요.
그렇다면 미술관은 누구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각자가 품고 있는 미술관의 의미는 다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향유할수 있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그 가능성을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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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와 함께 미술관을 관람하는 모습 ©미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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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편집ㅣ임슬기, 미션잇 콘텐츠 에디터 참여ㅣ김병수, 미션잇 대표, MSV 발행인 백경하, 미션잇 UX 리서쳐 및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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