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리서치도 GPT에게 물어보면 꽤 많은 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에 리서치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 데스크 리서치도 GPT에게 물어보면 꽤 많은 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에 리서치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든 조사가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맥락적 조사Contextual Research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역은 인공지능이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사람의 생각을 깊이 파고들고, 그 환경을 분석하는 일은 오직 현장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맥락이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GPT가 제공하는 정보는 대략적인 평균값이나, 경향을 추측할 수는 있어도 특정 상황에 있는 사람의 현실을 대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삶에는 공간적, 심리적, 사회·문화적 맥락이 얽혀 있고, 그로 인해 많은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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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한국에서 TV로 OTT를 시청하는 시각장애인 사용자와 미국에서 시청하는 시각장애인 사용자의 환경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다르다. 한국의 경우 상당수 시각장애인들이 정부에서 보급하는 시청각장애인용 TV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TV에 탑재된 기본 OS도 다를뿐더러 TTS(Text to Speech)로 읽어주는 기능도 미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Roku OS나 Google TV, Apple TV 등과 다르다. 언어 표현의 차이도 발생한다. 어떤 단어는 영어권 사용자에게는 자연스럽고 쉽게 이해되지만, 그대로 한국어로 옮기면 문화적 배경이나 사용자의 정서와 맞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영어 단어는 직관적으로 버튼임을 알 수 있지만, 그대로 한국어로 옮기면 한국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라 버튼처럼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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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휠체어 이용자는 리모컨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면 멀리 있는 TV를 조작하려고 리모컨을 써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실제 화면을 보는 환경은 침대 위에서 한쪽 벽에 기대서다. 그는 허리를 곧게 세운 채 화면을 보는 데 제약이 있다. 리모컨을 한 손에 들고 멀리 있는 TV를 향해 손을 뻗는 행동을 위해선 필연적으로 다른 한 손으로 벽을 집는 등 균형을 잡기 위한 추가 동작을 해야한다. 그래서 차라리 벽이나 베개에 기대어 핸드폰 화면을 조작하고, 리모컨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맥락은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을 직접 만난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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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를 보자. 미국의 단독주택 거주자들은 방마다 TV를 두는 경우가 많다. 가정마다 TV가 2~3대씩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공간을 이동할 때 TV 간 연동성이 꽤 중요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TV가 한 대뿐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고, 침대에서 아이패드 같은 휴대 기기로 시청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모바일 기기 간 연동성이 더 중요해진다. 이런 차이는 정량 조사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접근성을 분석할 때 가정 방문 조사를 선호한다. 표면적 인터뷰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없다. 위에서 말한 ‘화면을 보는 실제 환경’처럼, 사용자가 속해 있는 환경 속에 깊게 들어갈 때 당사자조차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냉장고만 열어봐도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읽히지 않는가?
리서치란 ‘정보 수집’이 아니라 정보를 ‘해석’하고 ‘문제 해결의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인사이트를 만드는 작업이라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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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도 어떻게든 해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해결의 열쇠를 제공할 것인가? 대체 무엇이 인사이트인가? 해당 분야에서 오래 일해보지 않았다면, 무엇이 인사이트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해석은 커녕,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인사이트란 정보를 읽는 대상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다. 실행에 영감을 주는 반짝이는 ‘무언가’다. 그런 의미에서 ‘발굴’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표면을 걷어내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인사이트를 끌어낼 때는 사람들 사이의 구별되는 것, 차별적인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나타나는 공통점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공통된 맥락을 읽어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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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인가?를 조사한다고 하자.우리가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는 얘기가 있다. “해보지 않았으니까 못하겠어.” 혹은 “익숙하지 않으니까”, “하던 게 아니니까”라는 표현들이다. 이런 정보를 한데 모으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어르신들에게 ‘익숙함’이란 편안함 정도가 아니라 사용 여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익숙함을 줄 수 있을까? 익숙함을 주는 요소는 뭘까? 여기서 우리는 어르신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에 익숙한지 추가 질문을 하고, 필요하다면 근거 자료를 모아 익숙함을 정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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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만 덧붙이자면 익숙함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기존 경험과의 유사성이다. 특히 결제 상황에서 익숙함은 ‘대면으로 건네는 것’에서 온다. 그렇다면 결제를 꼭 온라인으로만 할 필요는 없다. 직접 만나서 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결제뿐만 아니라 E-book을 읽을 때 익숙함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실물의 책을 넘기는 것과 같은 동작의 반영이 익숙함과 감성을 부여한다.
둘째 반복된 노출을 통한 학습이다. 동일한 형태, 표현, 구조가 반복되면 사용자는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다. 그렇다면 UI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다음 뉴스레터 ‘학습 곡선을 낮추는 디자인과 접근성’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처럼 공통된 맥락을 읽어내는 것은 심지어 사용자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던 생각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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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당사자를 대상으로 사용자 연구를 진행할 때 “장애인을 대상으로 조사할 때와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조사할 때 차이점이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사람은 다 같지 않나요?”라고 답하게 된다. 실제로 진행 과정에 특별한 차이가 없고, 방법론적으로도 달라지는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터뷰 대상의 인지적 차이는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프로젝트에서 몇몇 분들은 내가 물어본 질문과 다른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가령 “이런 방식일 때 사용하시기에 어땠어요?”라고 개방형 질문을 드렸는데,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경험을 말씀하시면서 대화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이 있었다. 질문을 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물론 상대방의 대답과 그 이면의 의도를 끝까지 파악하려는 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계속 해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가장 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직관적으로 끌어내야한다.
이 경우에 개방형 질문으로 가지 않고 선택지를 드린다. A와 B,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식이다. 참고로 세 가지 선택지까지는 괜찮지만, 네 가지 이상부터는 생각하는 데 에너지가 훨씬 더 소모될 수 있으니 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색상으로 이해하는게 편하세요? 숫자로 이해하는 게 편하세요?" 처럼 두 가지 선택지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거의 모든 참여자가 둘 중에서는 명확히 선택했고, 선호 이유도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연령의 아이들은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친구들과 여럿이서 그룹인터뷰를 진행한다면 약간 장난스럽게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직관적으로 아이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객관화된 선택지를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주관식과 객관식 중 심리적으로 어떤 것이 편한지를 생각해 보면 자연스레 답이 나온다.
둘째로 비언어적 행동에 주목한다. 언어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대답하는 순간의 태도, 어조, 표정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A가 좋은 것 같아요.”와 “당연히 A가 좋지.”라고 하며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은 꽤 차이가 있는 것이다. 비언어적 행동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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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구역을 색깔과 원으로 했을 때 이해하기 쉽다는 반응을 보였던 장애 당사자 ©미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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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5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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