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는 양 손을 모두 못쓰거나, 앞을 보지 못하거나, 혹은 귀로 듣지 못하기 때문에 촉각이나 90%를 위한 디자인 Design for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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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를 위한 디자인은 2007년 미국의 쿠퍼 휴잇 디자인 뮤지엄Cooper-Hewitt Design Museum에서 진행된 전시로 전 세계 디자이너, 엔지니어,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세계 인구 약 65억 명 중 58.3억 명, 즉 90%에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대부분의 제품과 서비스에 거의 접근하지 못하거나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주요 이슈로 삼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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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oper-Hewitt Design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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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22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world inequality report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0.001%(약 76,000명)는 전 세계 자산의 약 3%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하위 50% (약 32억 명)가 보유한 자산을 초과한다. 또한 상위 10%는 전 세계 자산의 약 76%를 독점하고 있고, 하위 50%는 고작 2%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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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rld Inequality Report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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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를 위한 디자인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피라미드 구조다. Y를 축으로 했을 때 부를 기준으로 나뉘어진 명확한 서열이 존재한다. 상위 10%가 위에 있고 90%는 아래에 있는 구조다. 나는 이 주제가 굉장히 의미있고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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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시지의 전달자와 청중은 누구일까? 당연히 10%에 해당하는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 10%들이여. 이제 90%를 위한 디자인으로 눈을 돌리자.”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여기서 말하는 90%에 속하는 사람이 “이제 90%를 위해 디자인하자”라고 말할리는 단연코 없다. 그 영향인지 2010년 전후로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들이라면 앞다투어 아프리카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컨셉 디자인을 선보였다. 심지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국제기구에서 전달한 페트병 물통을 받아 두드리면서 음악 연주를 하는 컨셉 같은 것도 국제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곤 했다.(심사 위원 중에 아프리카 사람이 아마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는 미묘하지만 명확한 시선 차이가 담겨있다. 기준점이 상위에서 하위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마치 90%를 위한 디자인은 명확한 위계가 존재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취지와 관계없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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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와 함께하는 디자인 Design with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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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에 빗대어 '10%와 함께하는 디자인'을 제안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10%와 90%는 앞서 설명한 ‘90%를 위한 디자인’과 수치는 같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앞에서는 부를 기준으로 한 수직축을 사용했다면 여기서는 수평축을 사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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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축의 기준은 감각의 스펙트럼이다. 수학의 정규분포를 생각해보자. 정규분포는 종 모양의 곡선으로, 평균을 중심으로 대다수가 분포하고 양쪽 끝으로 갈수록 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형태다. 사람들의 감각 역시 이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운데에 몰려 있는 보편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양쪽 극단에는 감각이 상대적으로 둔감하거나, 혹은 매우 예민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시각, 청각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감각을 고려했을 때, 10%는 양 손을 모두 못쓰거나, 앞을 보지 못하거나, 혹은 귀로 듣지 못하기 때문에 촉각이나 여러가지 다른 감각으로 정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10%와 함께하는 디자인이란 이처럼 감각 스펙트럼의 양 끝단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디자인하는 것이다.
최근에야 접근성이 공론화되기 시작했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논의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는 디자인의 중심이 ‘다수’를 위한 것에 치우쳐있었기 때문이다. 10%에 해당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보편성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 공간에 접근할 수 없었다. 턱이 있어서 넘지 못하거나, '모두가 볼 수 있다'고 예상하여 대체 텍스트를 달지 않은 이미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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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들과 함께 해야하는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누구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안전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신체적 정신적 특성에 따라 배제되어는 안된다. 또한 확장의 관점에서도 이들을 포함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는 곧 이윤의 확장이기도 하다. 사용자 경험의 양 극단을 만족시킨다면 그 안쪽에 있는 대다수는 당연히 만족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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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경험의 격차 Experience Gap를 강조하고 싶다. 경험의 격차란, 설계자와 사용자가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경험을 지녔기 때문에,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간극을 말한다. 설계자가 사용자를 100% 이해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제품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다른 사람, 특히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에서는 설계자가 사용자 모두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경험의 격차는 설계자와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과 연관이 있다. 다른 신체적, 정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격차가 더 커지게 된다. 다른 문화권, 다른 주거 양식, 다른 언어권에서 생활했다면 물론이다. 앞서 이야기한 한국에 있는 디자인 전공 학생이 아프리카의 어린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20년 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삶의 경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경험의 격차가 적을수록 사용자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설계자가 사용자의 상황과 맥락을 잘 이해할 수록 사용자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경험의 격차가 클수록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설계자의 목표는 경험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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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격차를 줄여서 결국 설계자와 사용자가 같은 시선에 놓여있다면 진정성있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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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와 함께하는 디자인’이란 곧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설계 과정에 참여시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참여시켜야 하는가? 의견만 받을 것인가, 공동으로 창작할 것인가, 혹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창작할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만들 것인가? 여러 방법론이 있겠다. 독립적으로 창작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은 장기간의 교육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수 있고, 더 폭넓은 여러 요소들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깊이 있게 의견을 받는 방안과 조금 더 유연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공동으로 창작하는 경우를 우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관찰 - 토의 - 피드백 구조가 핵심이다.
앞서 우리가 진행했던 서울시립미술관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결과물에 대해 특정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는데, 다만 유형의 도구를 만든다는 목표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각,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몇차례씩 참여시키는 과정을 설계했다. 백지장에 그려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참여한 이들이 공동의 창작자Co-Creator로서 더 적극적으로 의견과 아이디어를 제시해주기를 기대했다. 물론 실제 제품을 디자인하고 소재도 고르는 여러 디테일한 과정까지 함께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적 물리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최대한 깊이 있는 피드백을 주고 그 의견을 반영하여 제작하는 것도 공동 창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재, 사이즈, 촉감 등 여러가지에 대한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디자인에 반영했다.
경험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선을 맞춰야 한다. 미술관을 경험할 때에 어떤 니즈가 있고 장벽이 있는지, 함께 관람하며 대화하고 토론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인사이트는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는다. 현장에서 나온다. 이들 한 명 한 명이 인사이트를 주는 통로이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며 대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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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목업은 스피드가 중요하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서 선보이는게 아니라 하나의 가설 검증을 위한 실험이다. © mission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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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몇 명을 얼마나 오랜 시간 만나야 하는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단언컨대 오랜기간 만날 함께 시간을 보낼 수록 깊이는 깊어진다. 다만 경험을 통해 배우고, 빠른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피드백을 받고, 결과물을 완성 하는 단계는 다르지 않다. 우리는 시각, 발달장애 사용자를 대상으로 총 일곱 차례의 세션을 3단계로 나누어 진행했다. 1회차는 사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인사이트를 도출했고, 2회차는 빠르게 아이디어를 실현에 옮기기 위한 소프트 목업Soft Mock-up으로 피드백을 받았다. 이 때 완성도에 너무 공을 들일 필요는 없다. 완성도 보다도 빠르게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개선점을 찾는 데 목적이 있다. 3회차는 최종에 가까운 완성된 형태의 디테일과 마감을 가진 하드 목업Hard Mock-up을 만들어 피드백을 받았다. 이 단계에서는 사용자와 함께 전시를 관람하며 하드목업을 직접 사용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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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차 하드목업 단계의 제품은 최종적 형태에 가깝게 나와야 한다. 물론 하드목업 단계가 5회차일수도 있고, 7회차일 수도 있다. 단계를 여러번 거칠수록 완성도는 올라간다. ©mission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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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으로 논의해온 디자인이 대부분 결과물 중심의 디자인이었다면, 포용적 디자인은 과정 중심의 디자인이다. 이런 과정을 설계하는 것부터가 디자인이다. 포용적 디자인의 요소를 세 가지로 꼽는다면 하나는 사용자 중심 설계, 둘째는 특정 사용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높은 접근성, 그리고 셋째는 진정성이다. 진정성이 뒷받침 되어야 이런 과정이 비효율적이라던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반드시 필요하고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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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김병수 미션잇 대표 I MSV 발행인 byungsu.kim@missioni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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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만드는 인사이트. MSV의 다른 글도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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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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