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뉴스레터에서는 브랜드의 SNS 마케팅에서 ‘보이는 다양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 지난주에 발송된 뉴스레터 134호 <보는 다양성에 그치지 않기 : SNS마케팅에서 DEI가 실패하는 이유>편에서 오탈자가 있었습니다. DEI 중 E에 해당하는 Equality를 'Equity'로 바로잡습니다. 구독자분들의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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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뉴스레터에서는 브랜드의 SNS 마케팅에서 ‘보이는 다양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 콘텐츠가 어떤 삶의 맥락과 서사를 담느냐가 브랜드의 DEI 진정성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나 브랜드의 SNS 콘텐츠는 단지 ‘감 좋은’ 실무자가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포용적으로 되지 않는다. 결국 브랜드가 실제로 누구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어디까지 연결되고자 노력하는지가 브랜드의 콘텐츠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관점에서, 브랜드가 DEI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연결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실천들이 의미 있는 DEI 콘텐츠로 이어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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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실패한 사례를 두 가지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는 뷰티 제품을 판매하는 체인 기업 Ulta Beauty의 오프라인 이벤트다. Ulta Beauty는 텍사스 주 샌 안토니오 시에서, 틱톡TikTok 유명 뷰티 크리에이터 Mikayla Nogueira를 호스트로 한 오프라인 행사 <Ulta Beauty World>를 개최했다. 200여 개의 브랜드 부스에서 입장객들에게 제품을 무료 제공하였으며, 개최 전날 슈퍼모델 벨라 하디드가 지역 Ulta Beauty 매장에 방문하며 응원의 뜻을 표할 정도로 큰 규모의 행사였다.
문제는 이 이벤트에 대한 정보가 SNS에서 한정적으로 공유되었다는 점이었다. 지역 주민들, 브랜드의 ‘다이아몬드’ 등급 회원 등 충성 고객, 심지어는 일부 직원들조차도 행사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들을 중심으로 행사 운영이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의심 속에, 한 틱톡 유저는 “고가의 PR을 이미 자주 받는 인플루언서들은 또 공짜로 제품을 받고, 일반 소비자들은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며 강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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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사례는 탄산음료 브랜드 Poppi의 자판기 캠페인이다. Poppi는 2025년, 미국 미식축구 리그 결승전이 벌어지는 슈퍼볼 시즌 동안 자사 음료가 담긴 대형 자판기를 인플루언서에게 선물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Jake Shane, Rachel Sullivan, Avery Wood 등 유명 크리에이터들이 해당 자판기를 받은 후 SNS에 홍보 콘텐츠를 게시했고, 곧이어 소비자들이 반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돈이 많고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에게 자판기를 줄 게 아니라, 교사나 간호사처럼 무료 음료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지였다. 이후 Poppi의 경쟁사 Olipop이 한 영상의 댓글로 “자판기 한 대가 2만 5천 달러”라는 루머를 퍼뜨리며 논란이 거세졌고, Poppi의 공동창립자 Alison Ellsworth가 틱톡으로 직접 해명 영상을 올리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해명은 경쟁사에 의해 허위 정보가 유포되었으며, 캠페인의 목적은 슈퍼볼 주간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고, 소비자 피드백을 반영해 향후 더 다양한 지역과 커뮤니티에 자판기를 보낼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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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e Shane/TikTok; Cindy Ord/Get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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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a Beauty와 Poppi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는 무엇일까? 두 브랜드 모두, 소셜 미디어에서 영향력이 큰 ‘일부’에게만 집중하느라 많은 이들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며 강한 반감을 마주해버린 셈이다. 물론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갖는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그러한 마케팅 전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브랜드가 누구에게 가치를 부여하며, 어떤 사람을 ‘환영 받는 고객’으로 여기는지 예민하게 반응한다.
Ulta Beauty 사례의 경우, 수년간 제품을 구매해온 고객이나 일선에서 일하는 직원들조차도 행사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브랜드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Poppi 자판기 캠페인은 단순한 정보접근성의 문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경제적 불평등이나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마케팅이 얼마나 큰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준다.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가진 자원이, 이미 많은 특권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들이 아닌, 병원이나 학교 등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지역사회에 전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브랜드가 정말로 포용적이고 책임 있는 존재로서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려면 ‘선택된 소수’가 아닌, ‘보이지 않는 다수’를 향한 시선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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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포용적인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분명 있다. 다음 두 사례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보이지 않는 다수’를 환영하는 구체적 방식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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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low Recipe의 <Dew You Anonymous Open Casting>
미국에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K-뷰티 브랜드 Glow Recipe는 모델 선발 과정에서 지원자의 외모 대신 각자의 뷰티 여정에 담긴 이야기에 집중하는 캠페인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사회가 미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나요?”, “당신은 세상을 살아가며 어떤 경험을 해왔나요?”와 같은 질문을 통해 진행된 오픈 캐스팅에서는 자연스레, 마르고 아름다운 전형적 여성 모델만이 아닌, 연령, 성별, 인종, 장애 등에 있어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선발되었다.
그 결과 브랜드의 광고에는 이전보다 훨씬 다채로운 얼굴이 등장했을 뿐 아니라, 그간 조명되지 못했던 사람들이 브랜드의 SNS 페이지에서 역시 구체적인 존재감으로 대표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오픈 캐스팅에서 선발된 이들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사람들의 얼굴 사진뿐만 아니라 그들의 배경 서사까지를 모두 담았다. 인도 북서부 펀자브 지역의 문화(Punjabi culture) 정체성을 지닌 1세대 대학 진학자이자, 여드름으로 고생하며 스킨케어에 관심을 갖게 된 Jasleen, 여러 차례의 심장 수술을 이겨내고 ADHD와 함께 살아가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 Emma처럼, 화면 속 멀리 떨어진 모델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동료 시민의 모습을 브랜드 페이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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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캠페인은 모델 채용에 있어서 DEI를 실천하고자 노력한 사례이기도 하지만, 소비자들로 하여금 브랜드 마케팅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전략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동시에 각자만이 가지고 있는 배경의 조합들로 고유해진다. 그런 고유함을 주목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Glow Recipe의 캠페인은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러운 포용의 경험을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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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aula's Choice의 <On the rise> 프로그램
On the Rise는 뷰티 산업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소규모 흑인 크리에이터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팔로워 수가 2만 명 이하면서도 커뮤니티 내에서 신뢰를 받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중점적으로 선발되며, 브랜드는 이들과 1년간 계약을 맺고 다양한 활동을 함께 전개한다.
현재까지 6년째 운영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선발된 크리에이터들은 Paula’s Choice 제품을 활용한 영상을 촬영하거나 함께 브랜드 트립을 떠나기도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On the Rise 참여자들은 브랜드의 웹사이트 별도 페이지에 계속해서 소개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명 흑인 크리에이터와 교류할 기회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은 브랜드 SNS 채널을 통해 대중에게도 공유된다.
이 프로그램은 브랜드가 단지 콘텐츠 협업을 넘어, 소외된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파트너로서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소수 인종 크리에이터가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기회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브랜드가 가진 자원과 플랫폼을 재분배하고자 하는 태도는 DEI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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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Ulta Beauty나 Poppi의 사례와 달리, Glow Recipe와 Paula’s Choice의 캠페인은 ‘누구와 연결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좋은 답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들리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자 노력한다.
DEI는 종종 다양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로 축소되고는 하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SNS 피드가 닿는 사람들의 삶과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고 포용하는가'이다.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미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그 기회는 누구에게 열렸는지, 그 관계가 얼마나 지속가능한지를 함께 고려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DEI 실천이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다수’에게 마이크와 플랫폼을 열어주는 구조가 갖춰져야만 DEI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브랜드 정체성의 일부로 자리잡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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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브랜드가 ‘진심’을 다해 DEI 실천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의 일부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브랜드의 가치관을 예민하게 살피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며 DEI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 고객 충성도 확보, 신규 시장 개척에 있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DEI는 팔린다(DEI sells)”라는 말처럼,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천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득이 된다. 혹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천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그런 이유로 기업들의 앞다툰 다양성 브랜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렇다면 <Dew You Anonymous Open Casting>이나 <On the Rise> 같은 캠페인들도 결국 철저히 전략적 수단일 뿐이고, 그 뒤에는 공허한 손익계산만이 남는 것일까?
DEI가 ‘잘 팔리는 일’이 되었다고 해서 DEI가 가진 본래의 좋은 가치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단기적 화제성에 그치는 ‘DEI 흉내내기’가 아닌, 구조적 불균형을 인식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성실하게 설계된 DEI 캠페인은, 마케팅이면서도 동시에 진정성 있는 실천이 될 수 있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페이지에 올라온, 다양한 인종을 보여주는 몇 초짜리의 짧은 영상일지라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존재의 확인이자 환대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SNS에 올라온 포스트 하나, 영상 하나를 통해 세상을 감각하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그렇기에 기업의 SNS DEI 마케팅 전략은 누가 이 사회 안에 ‘존재해도 되는 중요한 사람’인지에 관한 상상력을 바꾸는 중요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조금 더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브랜드 역시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일이다. 소비자들의 마음에 가닿기 위해서는 DEI를 그저 마케팅 전략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실제로 누구와 연결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비로소 SNS 마케팅은 더 많은 이윤을 낳기 위한 도구를 넘어,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실천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https://www.mysanantonio.com/business/article/ulta-beauty-world-san-antfonio-20305085.php
https://people.com/poppi-vending-machine-influencer-drama-explained-1167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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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백경하, 미션잇 리서쳐
편집ㅣ임슬기, 미션잇 콘텐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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