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SNS를 스크롤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요즘 SNS를 스크롤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자신만의 경험과 배경을 콘텐츠로 풀어내는 개인 크리에이터들도 많고, 여러 인종이나 체형, 나이의 모델을 기용한 브랜드 페이지들도 눈에 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얼굴들이 우리의 피드에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런 변화는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Equality, Inclusion, 이하 DEI)이 점점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기업들도 더 적극적으로 SNS에서의 DEI 브랜딩을 실천하는 추세다.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SNS 페이지에 올라오는 포스트, 릴스, 스토리 등을 통해 브랜드가 누구와 협업하고,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살핀다. 때로는 브랜드의 SNS 담당자가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댓글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태도와 정체성을 파악한다. DEI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SNS 사용이 활발하고 DEI 감수성이 높은 MZ세대에게 SNS는 DEI 실천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SNS가 DEI-washing(보이기 위한 피상적 다양성 실천)에 가장 취약한 공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미션잇이 최근 진행한 글로벌 DEI 컨설팅 과정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마주한 기업을 만났다. 해외 진출을 앞둔 한 뷰티 브랜드 담당자는 이렇게 물었다.
“다양한 피부톤의 모델과 인플루언서를 써서 자사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우고 있는데, 왜 그만큼 팔로워들이 다양하게 늘어나지 않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DEI를 ‘잘’ 실천하는 브랜드로 인식될 수 있을까요?”
표면적인 다양성은 시작일 뿐이다. SNS 마케팅에서 진정성 있는 DEI를 실천하려고 할 때, 우리가 쉽게 놓치는 지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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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잇은 해외 시장의 DEI 트렌드와 리스크 및 향후 나아가야할 방향을 연구하는 6개월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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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브랜드들이 DEI 구현의 첫 단계로 ‘다양한 인종의 모델 등장시키기’를 선택한다. 한국 브랜드라고 해서 한국인 아이돌만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종의 사람들도 보여주고, 피부가 밝은 모델만이 아니라 어두운 피부를 가진 모델도 활용하는 식이다. 이는 물론 좋은 출발점이다. 역사적으로 미디어에서 소외되어온 피부톤과 인종의 사람들에게 대표성을 부여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쉽게 실행 가능하면서도 브랜드가 다양성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2022년, 하버드대학교 교수 Ellis Monk와 구글은 Monk Skin Tone Scale이라는 피부톤 분류 체계를 개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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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자주 쓰이던 Fitzpatrick 스케일의 6단계 분류를 보다 세밀하게 보완해 만들어진 Monk Skin Tone Scale ©Goog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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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k Skin Tone Scale은 기존에 자주 쓰이던 Fitzpatrick 스케일의 6단계 분류를 보다 세밀하게 보완해 만든 것으로, 마케팅 이미지에서 다양한 피부톤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데 도움을 주는 10단계 스와치 모델이다. 이러한 도구의 존재는 직관적 시각적 다양성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스펙트럼을 잘 채웠으니 이 브랜드는 포용적이다!”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뷰티 브랜드라면, 다양한 피부색의 모델을 사용했는지에 그치지 않고, 그 피부톤을 위한 실제 제품군을 제공하고 있는지, 협업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인종은 얼마나 다채로운지, 이상화된 외모나 경제적 여유의 기준을 강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 실질적이고 전반적인 DEI 요소들이 모두 평가 요인이 된다. 50가지 색상의 파운데이션을 제공하는 Fenty Beauty나 운동 기능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포용적 패키지 디자인까지 고민하는 Rare Beauty 등이 대중에게 호감을 사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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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ty Beauty의 파운데이션 스와치(좌), Rare Beauty의 포용적 패키지 디자인(우) ©Fenty Beauty, Rare Beau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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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잇이 리서치 과정에서 인터뷰한 미국의 한 소비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포용성과 다양성은 사람들이 ‘기본’으로 기대하는 것이에요. 단순히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죠. 그보다 더 포용적으로 보이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해요.”
결국 ‘대표성’은 외형의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어떻게 보여지는지뿐만 아니라, 그 브랜드가 어떤 현실을 만들어나가려고 하는지까지를 이미 민감하게 알아채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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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자기돌봄(self-care)’을 키워드로,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고 보살피는 맥락의 브랜드 콘텐츠가 또 하나의 DEI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러 가며, 각종 루틴을 따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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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에는 #SelfCare 해시태그를 단 영상이 1700만개, #cleangirl 해시태그를 단 영상이 100만개 가까이 올라와 있다. ©틱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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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는 문제될 것이 없어보인다. 클린한 뷰티 제품, 단순한 식습관, 뭐든 과하게 하지 않고 적절한 휴식과 여유를 병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중점에 두는 “clean-girl aesthetic”의 유행이 보여주듯, 이러한 트렌드에 호응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자기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챙기는 일은 인종, 나이, 성별, 그 어떤 배경과도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이 자기돌봄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모두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돌봄, 회복과 같은 키워드들이 갖는 포용적 편안함과는 별개로, 브랜드에서 제시하는 ‘자기돌봄’의 상이 실제로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유기농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분명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사먹는 것보다 많은 금전, 시간, 심리, 관계적 자원 등이 필요할 것이다. 재료값이 더 비싸다는 문제 외에도, 유기농 제품을 찾고 직접 조리하거나, 그러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방문하기까지의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많은 장벽이 있는 일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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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care’ 트렌드를 비판하는 유튜버들도 등장하고 있다. ©berry9e(좌), Hannah Alonzo(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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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잇이 인터뷰를 통해 만난 소비자들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한 소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썸네일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느낌이에요. 잘 관리된 손톱, 예쁜 머리핀, 맥북, 줄무늬 시트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죠. 모두 한 가지 유형의 소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건 알지만, 소비자가 그것을 실제로 달성할 수 없다면 (그런 이미지만을 보여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포용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또 이렇게 말한 소비자도 있었다:
“(아름다운 인플루언서들을 보면) 그냥 슈퍼모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절대로 그 사람처럼 될 수 없죠. 그냥 부자가 계약을 맺었구나 싶고, 저는 핸드폰을 통해서 그 사람이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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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자기돌봄’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가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종류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뒷받침되어야 실현 가능한 이상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늘 잘 돌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삶에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자기를 보살피고 챙기는 일에 실패하면서도 불완전함과 함께 나아가는 구질구질한 일상이 SNS에서 흔히 보이는 “clean girl”의 깔끔한 삶보다는 우리의 현실에 가깝다.
그렇기에 소비자들이 현실적 삶 속 자기돌봄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브랜드가 자신이 편히 누릴 수 없는 삶의 기준을 제시할 때, 그 브랜드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다. 스스로를 돌보자는 표면적인 DEI 메시지보다도, 자기돌봄을 쉬이 실천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들에 대해서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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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사례들이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SNS에서 DEI를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히 포용적으로 ‘보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지, 어떤 삶의 경험을 담고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말하는 DEI가 보여주기식인지, 진심에서 비롯된 노력인지 감각적으로 구분해낸다.
그러나 여기서 또다른 고민이 남는다. SNS 페이지에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브랜드는 온라인 세계에서만 활동하지는 않는다. SNS에 올라가는 콘텐츠는 오프라인의 사람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피드 바깥에서 브랜드의 DEI는 어떻게 진정성있게 실현될 수 있을까? 그러한 노력은 어떻게 다시 온라인에 반영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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