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사회적 포용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디자인 방법에 대해 필 지속가능한 경영, 지속가능한 정책, 지속가능한 디자인. ‘지속가능’이라는 말은 어떤 분야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성이란 뭘까? 지속가능성을 뜻하는 영어 단어 "Sustainability"는 라틴어 "sustinere"에서 유래했고, "sub-" (아래)와 "tenere" (붙잡다, 유지하다)의 조합이다. 그래서 "지탱하다," "유지하다," 또는 "버티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고, 영어에서는 "sustain"이란 단어로 이어졌다. 결국 현재의 어떤 상태를 유지하거나 계속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1987년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전세계적으로 일깨우고자 했던 *브룬트란트 위원회Brundtland Commission는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보고서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이들은 지속가능성을 '현재의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현재'와 '미래'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한 개념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이 미래 세대에게도 충분히 남아있도록 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현재는 진정한 의미에서 지속가능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은 건강, 위생, 식량, 평등 등 전 사회적 요소들을 아우르며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비전을 포함한다.
UN에서 제안한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역시 그 취지를 담아, 2030년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표로 설정됐다. 이는 사회적 포용, 경제 성장, 그리고 지속가능한 환경이라는 세 가지 축을 바탕으로 실현된다.
*브룬트란트 위원회는 1983년에 유엔(UN) 주도로 설립된 '세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 위원회(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WCED)'의 비공식 명칭이다. 노르웨이의 당시 총리였던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Gro Harlem Brundtland가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브룬트란트 위원회로 불리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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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사회적 포용Social Inclusion이라는 부분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 UN이 말하는 사회적 포용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회에 참여하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기회를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특정 계층, 인종, 성별, 연령, 장애 여부 등에 따른 차별이나 배제 없이 누구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특히 취약 계층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사회적, 경제적 혜택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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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2030년까지 시행되고 있는 유엔과 국제사회의 최대의 공동 목표인 SDGs 핵심은 사회적 포용, 경제 성장, 지속가능한 환경의 3대 분야이다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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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포용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내 여러 목표에서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목표 1(빈곤 퇴치), 목표 5(성평등 달성), 목표 10(불평등 감소) 등에서 포용성을 높이고 차별을 줄이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또한, 목표 11(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은 도시 내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는 특히 소외되기 쉬운 여성, 아동, 장애인, 노인에게도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사회적 포용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디자인 방법에 대해 필수적으로 논해야 한다. 이번 뉴스레터는 구체적으로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접근 방식에 대해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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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 피드백을 통해 경험의 격차 줄이기
Bridging the Experience G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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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하는 사람이 곧 사용자인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아닌 경우는 훨씬 더 많다. 가령 핸드폰의 보이스오버Voiceover 기능을 만드는 개발자가 모두 시각장애인은 아니지 않는가? 혹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한 경사로를 설계하는 건축가나 시공 담당자가 모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사용자와 설계자 사이에는 경험의 격차Experience Gap가 항상 존재한다. 이것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최적의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뉴스레터 107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가이드의 수치를 맹신하지 않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의 사례에 주목할만 하다.어떻게 현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접근성에 제약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설계 기준을 실제 테스트를 통해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시카와 현 내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협회, 전국 척수 손상자 연합회 이시카와 현 지부, 가나자와 ‘손을 잡는 부모 모임’등 인근의 장애인 관련 단체와 협력하여 현장 테스트를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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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크기 모형을 가지고 테스트하는 모습 © Ishikawa prefectural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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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범위도 광범위했다. 우선 도서관 책장이나, 의자 등 여러 가구들을 도서관 내에 실제로 설치하기 전 실물 크기 모형(Mock-up)을 통한 검증이 이루어졌다. 큰 도서관의 설비들을 어떻게 다 검증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목업을 다양하게 배치하여 사전 검증하는 방법을 택한 것도 흥미롭다.
검증 항목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원형 열람 공간에서는 경사로의 기울기, 경사로 너비, 휠체어 회전 가능 여부, 계단에서 휠체어 이용자의 교차 통행 가능 여부, 책을 집고 이동하는 동작 등을 확인했다. 둘째로 서가에서는 책을 손에 집는 동작, 서가 측면의 사인의 시인성, 그리고 바닥 재질을 비교하며 검증했다. 셋째로 책상 좌석, 카운터 좌석, 소파 좌석도 모형을 통해 실제 사용 시의 편리성과 적합성을 평가했다. 넷째, 도서 반납함 투입구에서는 반납함 투입구의 높이를 다양한 위치에서 확인했다. 정면에서는 116cm와 80cm, 1층 도서 구역 입구는 116cm, 북쪽 현관은 90cm, 어린이 구역은 80cm, 2층 도서 구역 입구는 90cm로 각각 설정하여 검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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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과정에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용자들이 참여했다. 먼저 편마비가 있는 사용자들은 주로 지팡이를 사용했는데, 경사로의 기울기와 너비, 서가의 접근성을 검토했다. 휠체어 사용자들은 전동 휠체어와 수동식 휠체어 사용자로 나눠 검증했다. 전동 휠체어는 자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간의 회전 반경과 경사로의 기울기가 중요했고, 수동식 휠체어는 사용자가 직접 바퀴를 움직이므로 더 넓은 통로와 평평한 바닥이 필요했다. 하반신이 마비되었거나 팔다리가 마비된 사용자들은 휠체어를 이용하면서 서가와 열람석의 이동과 책을 집는 동작이 편리해야 했다. 또한 참가한 시각 장애 사용자들 역시 다양했다. 완전히 시력이 보이지 않는 전맹 시각장애인 사용자는 촉각과 청각에 의존하여 바닥 질감 변화나 소리를 통해 방향을 인식할 수 있도록 설계가 필요했고, 저시력 시각장애인 사용자들은 조명과 사인의 가시성이 중요해 서가와 책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환경이 요구되었다. 시야 협착(시야가 좁아지는 상태) 사용자들의 경우, 시야의 폭이 제한되어 있어 물체나 공간을 인식하는 데 제약을 겪으므로, 장애물이나 이동 경로의 명확한 구분이 중요하게 검토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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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용자들을 최대한 참여시켜서 테스트를 통해 세부적인 것들까지 설계하는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의 설계 과정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실 목업 테스트를 3일간 진행하면서, 출입구에 대한 의견만 받고 그칠 수도 있다. 혹은 주요 배리어 프리 인증 항목들만 검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넓고 세부적인 영역까지 검토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지만, 이는 모두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고자 하는 치밀한 노력이라 볼 수 있다. 도서 반납함 투입구까지 휠체어 이용자의 앉아있는 높이를 고려하여 설계하는 것은 사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여 대상과 실제 참여도 중요하지만 참여를 통해 함께 고민하게 되는 항목의 다양성과 종류 역시 진정성 있는 참여하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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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의 눈높이에서 심리적 장벽 낮추기 Lowering Psychological Barri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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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방식이 물리적인 접근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심리적 장벽과 관련된 부분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한다. 사회적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뉴스레터 109호에서 그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스웨덴 말뫼 도서관의 접근성 스페셜리스트인 카린 라르손은 사회적 접근성을 ‘당사자의 눈높이에 맞춰on their level’ 만나는 것이라 표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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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의 눈높이에 맞춰 만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이가 바닥에 앉아 있을 때 함께 바닥에 앉아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 어르신이 천천히 걷는다면 그 속도에 맞춰 발걸음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며 길을 안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음성 안내나 점자를 제공하는 것처럼, 상대방이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그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사회적 접근성이란 이런 일련의 활동을 통해 방문자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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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말뫼 도서관(Malmö City Library)의 가이드라인<A Library Without Obstacles> 에서 사회적 접근성을 높이는 실천방안으로 “매번 좋은 대화 나누기(Having a good conversation every time)”라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접근성의 시작은 환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출발한다. 대면 상황에서의 말 한 마디, 제스처, 표정, 목소리 톤과 같은 요소들은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대면으로 누군가와 만나는 것이 아니고 처음 맞닥뜨리는 것이 제품이라면 언박싱하는 순간부터가 심리적 장벽을 낮추거나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용자라면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처음 셋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을 언박싱할 때부터 접근성을 고려한 음성 안내 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하여 셋업 과정을 안내해 준다면, 사용자가 첫 순간부터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첫 접점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과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온라인 서비스의 경우 첫 화면에 명확한 안내 메시지와 사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메뉴 구성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포용적인 렌즈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것을 당연시 여길 것인가? 아니면 체계적인 기준을 세워서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인가는 결국 진정성에 달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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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러 스마트 TV 관련 제품의 언박싱부터 초기 설치 과정을 비교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을 타인의 도움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몇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익숙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제품은 모바일과 TV가 각각 다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적응시간이 빨랐다. 인터페이스 상에서 몇 번의 터치로 내게 익숙한 느낌을 주는 순간 심리적 장벽도 자연스레 낮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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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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