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잇과 MSV의 업무의 상당 부분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쓰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혹은 공간에 있을 때의 경험을 이해하고 또 분석하여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이런 경험을 분석하는 데 있어 소외되어 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최근에는 고연령 어르신들을 만나는 일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 |
|
|
인터뷰도 종류가 여러가지다. 주로 목적에 따라 분류를 하겠지만 우리가 하는 인터뷰는 특정 경험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인 동시에 경험을 기반으로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인터뷰’다. 쉽게 말해 탐구하는 인터뷰라 생각하면 되겠다. 사실 이런 과정을 누군가에게 배워본 적은 없다. 그냥 하다보니까 이해하고 깨닫게 되는 것들이 생기게 된다. 인하우스 기업 업무를 포함해 지금까지 수백번 인터뷰를 해보면서 깨닫게 된 몇가지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
|
|
인터뷰의 목적은 나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인터뷰 대상만의 고유의 생각과 스토리를 발견하고 이를 표면 위로 끄집어 내는 것이다. 보통은 이미 이슈화된 사람들, 여러 기준으로 봤을 때 이미 알려지거나 알려져야 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가 평범하고 아닌가에 대해서의 논의는 차치하기로 하자.) |
|
|
이렇다 보니,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조차 약간 어색해하거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생긴다. 세상의 기준에서 나름 업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이끌어내는 인터뷰라면, 그 업적이나 노력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툭 치면 나오는 대답을 기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
|
|
그렇다면, 왜 굳이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는 걸까? 그 이유는 포장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의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이해관계나 전문성에 얽매인 의견이 아니라, 진짜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그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그들의 말뿐만 아니라 행동, 어조, 목소리 등 여러 요소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
|
|
내가 주목하는 것은 형용사와 수식어다. 포장되지 않은 그 수식어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만나지 않고서야 알아가고자 하는 그 사람은 포장된 상태다. 진짜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사람과 대화를 해봐야 하고, 더 잘 알기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보내고 또 같이 살아봐야 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우리 가족이듯 말이다. |
|
|
최근 한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며 식경험에 대해, 그리고 요리를 하며 요즘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여쭤봤을 때,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
|
“가끔은 요리가 진짜 하기 싫어. 나이 먹으니까 어느 순간 힘이 없고 지쳐서 그래.” |
|
|
이 문장에서 ‘진짜’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테이블에 앉아 말씀하시던 그 공간과 시간 속의 ‘진짜’라는 단어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진짜’ 힘든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계속해서 여쭤봐야 한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그 내면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올라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사이트다. |
|
|
인터뷰어의 역할은 완전한 몰입을 통해 그 사람의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단순히 단답식 대답이나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오직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 그 사람의 일상 속에 정말 포장되지 않은, 그래서 평범하면서도 진솔한 대답이 중요하다. 이것을 이끌어내는 것이 인터뷰어가 할 일이다. |
|
|
사실 인터뷰까지는 어찌보면 누구나 해봄직할만한 일이지만, 인터뷰의 궁극적인 목적인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일(이 부분은 미션잇과 MSV가 진행하는 인터뷰에만 한정한다. 인사이트 발굴이 인터뷰의 목적이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에는 경험적인 요인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 인사이트란 뭘까? 이와 관련하여서는 꽤나 길게 서술할 수 도 있겠지만 짧게만 이야기하자면, 인사이트는 인터뷰의 요약이 아니다. |
|
|
인사이트는 생각과 시야를 넓히는 촉매제 같은 것이다. 특정 코멘트나 행동 등 유·무형의 요소가 인사이트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의미있는 개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혹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빛을 던지는 어떤 것인가?를 경험적으로 알아야 한다. 어떤 산업과 관련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높은 수준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 전에는 선행 지식이 실무적으로나 데스크 경험상으로나 상당히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
|
|
물론 이미 정보가 포화된 시대에서는 인터넷 검색이나 ChatGPT 같은 도구를 통해서도 충분히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의견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에 대해 GPT에게 물어보면 나름대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이다. GPT도 “앱에서 버튼을 클릭할 때 명확한 피드백을 줘야 하고, 이를 위해 색상이 바뀌거나 별도의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앱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적인 수준의 정보다. |
|
|
그런데 실제로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입력 칸의 색상이 바뀌고 피드백 문구가 나타나도 여전히 다음 단계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거나 막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나름대로 피드백과 색상 변화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럴까? 이는 피드백을 어르신들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준에서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의 수준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그 수준은 어떤 것인지는 오직 '맥락'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점에서 어르신이 어려움을 느꼈는지, 또한 이분에게 무엇이 가능한지 현장에서 답을 찾아 나간다. |
|
|
이와 관련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소설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라는 의견이 있어도 당연한 것이고, 그와 동시에 ‘이 세상에는 반드시 소설이 필요하다’라는 의견도 당연합니다. 그건 각자 염두에 둔 시간의 스팬(span)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이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 뒤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중층적으로 성립합니다. 그중 어느 쪽이 빠져도(혹은 압도적인 열세여도) 세계는 필시 일그러진 것이 되고 맙니다.” |
|
|
인터뷰를 곧 소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루키의 말처럼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발품을 팔고 오랜 시간을 들이는 점에서 우회하기와 같은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정답은 사용자에게만 있다는 대전제를 명심한다면 위에서 소설에 대해 표현한 ‘효율성이 떨어지는 우회하기’ 보다는 ‘높은 효율을 가진 우회하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
|
|
변화를 만드는 인사이트. MSV의 다른 글도 읽어보세요. |
|
|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
|
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