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지대를 포함한 국립공원을 생각해보면 접근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산 밑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면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산에 있는 국립 공원을 휠체어를 타고 오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쿼이아 킹스 캐니언 국립공원Sequoia & Kings Canyon National Parks의 접근성 필름 시리즈를 접했을 때, 국립 공원도 접근성 개념을 도입해 충분히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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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필름 시리즈는 총 다섯 편의 3분짜리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등장하여 접근 가능한 시설들에 대해 설명하고, 비슷한 여건의 사람들이 방문할 때 유용할 팁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국립 공원 내 트레일 루트 중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잘 깔린 평평한 도보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공원에 도착하기 위해 두 지역에서 휠체어로 탑승 가능한 셔틀이 운행되는데, 각 셔틀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도 덧붙인다. 또한, 영상에 등장하는 전맹 시각장애인 여성은 점자로 읽을 수 있는 안내도를 읽으면서 안내도가 메탈 소재로 되어 있어 손이 시려울 수 있으니 장갑을 꼭 챙기라는 당부도 한다. 이외에도 ASL(미국 수어)로 설명이 제공되는 크리스탈 동굴 투어, 휠체어로 이동하기 용이한 주차장과 경로가 마련된 캠프장에 대한 정보도 상세하게 다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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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쿼이아 킹스 캐니언에서 휠체어로 접근하기에 인기가 높은 트레일 코스. 평점도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코스는 3.5km로 한 시간 정도 산책할 수 있다. ©Alltrai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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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깊었던 영상은 장애 아동과 부모, 세 식구가 나오는 이야기였다. 영상은 이들의 하이킹 경험을 담고 있는데, 먼저 세 가족이 클로즈업되면서 공원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 거대한 바위, 나뭇가지 등 그들이 마주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설명한다. 그러다 차츰 아들 아이작의 신체적 특징이 드러난다. 아이작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한쪽 다리가 없었고, 여덟 살 때 입양되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또 양 손도 장애가 있다. 산을 다니기에 분명 여러 제약이 있지만, 보조기구를 사용하며 평평한 지역들을 걷고, 또 바위에도 올라가본다.
전반적으로 세쿼이아 킹스 국립공원이 보조기구를 사용하며 걷는 아이작에게 완벽히 편한 장소는 아닐수도 있지만, 아이가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신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임을 여러 장면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기대감이 이들 가족에게 있다. 영상 속 아버지는 "제 아들도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이 메시지에서 누구나 국립 공원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의지가 전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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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접근성 필름 시리즈가 기획된 과정과 공원 내에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궁금했다. 이 시리즈는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의 시각정보 스페셜리스트인 에리카 윌리엄스가 기획했는데, 국립공원관리청의 친절한 안내로 그와 직접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국립공원을 즐기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하이킹이나 캠핑을 하거나, 공원 내 센터에서 설명을 듣고 영상을 시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원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자원봉사를 통해 더 깊이 공원을 체험할 수도있을것이다. 에리카는 이러한 풍부한 경험을 모든 방문자들이 국립공원 내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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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과 그의 가족 © National Park Serv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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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많고 경사가 가파른 환경에서 어떻게 좋은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에리카는 모든 트레일이 최상의 접근성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영상에서도 많은 영역이 평평한 도보로 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공원의 ‘좋은 접근성’이란 방문자가 ‘어떤 추가적인 요청‘ 없이 독립적으로 공원을 즐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며 이를 위해 정확한 정보 제공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쿼이아 킹스 캐니언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접근성 관련 정보가 매우 상세하게 제공되어 있다. 심지어 화장실 수도꼭지는 손가락을 사용하는 대신 주먹을 쥐고 밀거나 돌리는 동작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접근성에 조예가 깊은 한 사람만의 노력인가? 에리카는 팀 내부에서 접근성이 프로젝트 진행 시 하나의 필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런 고민이 자연스럽게 병행되기 때문에, 이제는 팀 미팅에서 ‘접근성’이라는 단어를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고 했다. 접근성이 기본값이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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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 시각장애인 여성이 점자 안내도를 확인하는 모습 © National Park Serv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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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접근성은 곧 디폴트 필터”라는 부분이 매우 인상 깊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것들이 바로 이러한 ‘기본값’에 대한 것이다. 많은 경우 설계의 기본값은 특정 사람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경우도 다수였다. 트레일이나 전망대는 휠체어 접근이 어려운 경로로 설계되거나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 표지판이나 음성 가이드가 없는 경우도 흔하다. 접근성이나 포용적인 설계는 대부분 ‘옵션’으로 취급되었고 기본 설계가 끝난 후에야 추가로 고려되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에리카가 말한 것처럼 접근성이 기본값이 되어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은 그만큼 팀 내부에서 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이미 깊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단 한 번의 이벤트나 일회성 개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피드백 수집과 실제로 이를 반영하는 노력, 그리고 팀 내부에서 접근성의 중요성을 일상적으로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문화가 정착된 결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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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서 화장실로 가는 길은 이렇게 평평한 도보가 깔려있다. © National Park Serv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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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쿼이아 킹스 케니언의 담당자들은 컨 카운티 장애인 자립생활센터Independent Living Center of Kern County와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었다. 센터의 구성원들과 함께 접근성 영상 시리즈를 만들었고, 센터로부터 장애인식교육도 받는다. 국립공원에서 전시 준비를 진행할 때는 이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피드백을 받아 진행하고, 전시 이후에도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인 개선을 이어나간다. 설계자나 관리자가 보지 못하는 허점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속적인 피드백 과정이 지속가능한 접근성을 만든다.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필터이면서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들을 초청하고 피드백을 받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특별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자리잡아야 한다. 이는 우리 시대의 모든 기획자에게 요구되는 책임이자 관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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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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