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헬싱키 시는 '대도시의 심장The Heart of the Metropolis'이라는 중앙도서관 핀란드 헬싱키 시가 직접 관리하는 시민 참여 프로젝트 오마스타디OmaStadi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가치를 전달하는 시대.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저자 오바라 가즈히로는 ‘커뮤니티야말로 경영 전략의 핵심’이고, 이 커뮤니티를 가장 밑에서부터 받쳐주는 요소가 바로 과정 속에 담긴 이야기와 서사라 말한다. 갑자기 이 프로세스 이코노미와 헬싱키라는 도시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헬싱키 오디 도서관의 정보 접근성 전문가인 사무 이브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오디 도서관이 설립 초기부터 시민 주도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여러 인터뷰와 자료를 살펴보니, 오디 도서관은 진정한 시민 참여의 산물이었다. 2008년 헬싱키 시는 '대도시의 심장The Heart of the Metropolis'이라는 중앙도서관 리뷰 리포트를 기반으로 오디 도서관의 프로젝트 목표와 비전을 설정했다. 이 문서의 작업 과정에서부터 수많은 도서관 이용자들이 참여하고, 토론을 통해 도서관의 방향성을 설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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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도서관 시민 참여 워크숍 장면 ©Haavisto, Tuula; Lipasti, Pirjo; Sauli, Ant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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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공모를 위해 2010년부터 시작된 '중앙 도서관을 위한 꿈의 나무The Tree of Dreams for Central Library' 프로젝트는 디지털 플랫폼 형태이자, 실제 나무 형태로 헬싱키 시내를 순회하며 시민들의 꿈을 가지의 잎으로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총 2,300개 정도의 아이디어가 수집되었고, 모든 자료는 분류하고 분석되어 결과물에 반영되었다. 특히, 10만 유로의 예산을 시민 참여 워크숍을 통해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꿈의 나무 프로젝트에서 수집된 아이디어 중 8개가 최종 선정되어 이 예산이 사용됐다. 무엇보다 이런 이용자들의 참여 뿐 아니라 헬싱키 국립 시청각 연구소와 알토대학, 여러 디자인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서비스를 함께 설계한 점에서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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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2018년 12월에 완공되었지만, 오디 도서관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고객들과 함께 도서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The building was completed in December 2018, but Oodi will never be finished. We continuously develop library services and always together with customers,” Anna-Maria Soininvaara, Oodi Direct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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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도서관 내에 핀란드의 자랑인 사우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까지도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런 접근 방식이 꽤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헬싱키에서는 시민참여형 설계가 일반적인지 물어봤다. 그는 헬싱키는 오마스타디 같은 것도 있다고 했다. 순간 나는 잘못 알아듣고 헬싱키 시가 글로벌 건축회사 OMA와 관련된 어떤 케이스스터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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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도서관은 얼마나 편안한 장소가 되어야 하는지 사우나를 진지하게 검토한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fluid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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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시 찾아보는 중에 그가 말한 것이 오마스타디OmaStadi라는 헬싱키 시의 시민 참여 프로젝트임을 알게 되었다. 오마스타디는 헬싱키 시가 직접 관리하는 프로젝트로, 시민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선정된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핀란드어로 'Oma'는 '자신의' 또는 '나의'를 의미하고, 'Stadi'는 '도시'를 뜻한다. 즉, OmaStadi는 '나의 헬싱키' 또는 '나의 도시'라는 의미로, 시민이 직접 도시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오마스타디 프로세스는 익히 들어온 시민참여예산제 방식이다. 헬싱키 시민들이 직접 도시 발전을 위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이 중 선정된 아이디어를 실행한다. 과정은 총 다섯 단계로 나뉜다. 먼저, 오마스타디 접수 기간 중 시민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도시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시 정부와 전문가들이 이를 검토한다. 이후, 공동 워크숍을 통해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그다음으로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가 이어진다. 이후에는 13세 이상의 헬싱키 주민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프로젝트에 투표하고,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프로젝트부터 예산이 할당된다. 투표로 선정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은 오마스타디 웹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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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50억원이 투입된 오마스타디 2023-2024 프로세스. 이번이 세 번째 진행이다. ©OmaStad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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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마스타디에서 주목한 부분은 실시간으로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NGO에 기부하고 있는데, 어떤 곳은 기부된 금액이 어떻게 쓰이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반면, 어떤 곳은 내가 기부한 금액의 사용 내역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변화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중간에 기부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끝까지 기부를 이어가게 된다. 참여하는 당사자는 그 변화가 구체적으로 느껴져야 한다. 변화가 보여야만 참여의 의미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오마스타디는 도시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힘은 웹페이지를 통해 실행 정보가 매우 구체적으로 공개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디자인과 구성도 탁월하다. 우선, 헬싱키 전 지역에서 시행된 프로젝트의 편성 예산과 집행 예산을 한번에 볼 수 있다. 투표 수 역시 정확하게 나와 있어, 인기 순위에 따른 집행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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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스타디 홈페이지의 가장 상단은 “오마스타디 프로젝트들을 확인해보세요”라는 메시지가 자리잡고 있다. 첫번째 네비게이션 바는 '이행Implementation'이다. 참여한 시민들은 누구나 '그래서 도시가 진짜 바뀌는 건가?' 하는 궁금증을 항상 안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가장 궁금하게 생각할만한 부분을 첫 카테고리로 놓은 것이다. 상단 검정색 바나 '이행' 탭을 클릭하면 현재 실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하게 된다. 메인 화면에서는 아래 이미지처럼 추진 과정과 지역별 배분 예산도 정확하게 공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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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현재 실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지도 상에서 세부 지역까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리스트 형태로도 볼 수 있다. 해당 위치를 클릭하면 아래 이미지와 같이 프로젝트 상세 페이지로 넘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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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페이지에는 프로젝트 과정이 세부적으로 나와있다. 헬싱키 북부 지역에 야외 운동 시설이 생기는 프로젝트에 할당된 예산, 투표자 수, 실행 지역과 부서 담당자의 이름까지 적혀 있다. 또한 평균적으로 오마스타디 프로젝트가 어느정도의 퍼센트로 진행되고 있는지 상세히 나와있다. 예를 들어 오마스타디 전체 프로젝트의 평균적인 진행 현황은 6.3% 인데, 본 프로젝트의 실행은 10%정도다. 상세 페이지에는 그 외에 유사 제안 아이디어, 핀란드 시와 참여 시민들의 피드백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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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 내에서 최고 득표를 얻은 제안과 할당 예산도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고, 지역 별로 확인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오마스타디 웹사이트는 바르셀로나 시 주도하에 만들어진 오픈소스 플랫폼 데시딤Decidim을 활용했다. 데시딤은 시민들이 직접 제안서를 제출하고 의견을 나누며 시의 정책과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데시딤에서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제안부터 최종 의사 결정과 이후 집행과정을 추적할 수 있게 설계됐다. 또한 모듈형 구성으로 각 시에서 원하는 모듈만 조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맞춤형 환경이 제공 가능하다. 뉴욕시의 시민 참여 플랫폼 (https://www.participate.nyc.gov)이나, 프랑스 하원의 국민청원 플랫폼(https://petitions.assemblee-nationale.fr), 브라질 정부의 참여 플랫폼(https://brasilparticipativo.presidencia.gov.br)도 데시딤을 활용했다. 위의 사례들은 시민 참여와 민주적 거버넌스라는 주제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지만 각 나라에서 플랫폼을 사용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동일한 조건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 중 헬싱키의 오마스타디 플렛폼은 참여와 결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사용자 친화적이다. 같은 디시딤을 사용한 플랫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웹사이트 대비 시민들이 궁금해할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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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시민 참여를 통해 도시의 일부분을 바꿔가는 일들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다. 서울시도 '참여예산제'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이 낸 의견을 시 예산에 반영하여 실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런 참여예산제(Participatory Budgeting, PB)의 시작은 1989년 브라질 남부에 위치한 도시,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비롯됐다. 포르토 알레그레는 최초의 참여예산제를 도입한 도시로 평가받는다. 도입된 배경은 이렇다. 당시 심각한 부패와 부조리를 겪고 있던 포르토 알레그레 시는 새로운 정당이 들어서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그래서 시민들이 직접 예산 배분 과정에 참여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도록 함으로써 잘못된 관행을 없애고자 하였다. 특히 빈곤층을 비롯하여 소외된 사람의 목소리를 끌어올리고자 시민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 서비스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실제 결과로 나타났다. 1988년에서 1997년 사이에 하수도와 수도 연결이 전체 가구의 75%에서 98%로 증가했으며, 1986년에 1,700명의 시민에게 주거를 제공하던 공공 주택 단지는 1989년에 27,000명에게 주거를 제공했다. 보건과 교육 예산은 1985년에는 전체 예산의 13%였으나, 1996년에는 거의 40%로 증가한 점은 시민참여로 만들어낸 큰 성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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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o Sérgio Buarque de Holanda - Fundação Perseu Abra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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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스타디는 사회적 재분배와 평등을 중요시한 포르토 알레그레와는 분명 다른 점들이 있다. 일부는 이 프로젝트의 한계를 지적하며, 포르토 알레그레처럼 더 소외된 계층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성이나 정부의 역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오마스타디는 예산 편성까지 주민이 주도하는 적극적인 모델은 아니기에 정부 기관의 역할이 더 강조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마스타디의 과정 중심 접근 방식이다. 프로세스 이코노미에서 강조하는 과정의 공유, 즉 참여자들이 궁금해할 수 있는 내용과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앞서 참여형 디자인 프로세스를 'For', 'With', 'By'의 세 카테고리로 나누었는데, 오마스타디는 'With'의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시민참여예산제는 '시민 주도'라는 이름 아래 시민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정부가 이를 실행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실행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 반면, 오마스타디는 결과물이 실행되는 과정을명확하게 공개하고, 누구나 검색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에게 진정성을 전달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공공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이 고객에게 특정 비전을 제시했다면, 그 비전이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가치 실현을 증명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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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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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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