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다. 그리고 길을 따라간다. 보통 우리가 어떤 지점에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동할 때 적용되는 행위다. 웨이파인딩 Wayfinding이라는 용어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모든 방식을 일컫는다. (사실 이 웨이파인딩이 한국어로 직역하면 '길찾기' 인데, 웨이파인딩이 워낙 공용적으로 쓰이다보니 우선 웨이파인딩 디자인이라 지칭했다. 하지만 더 좋은 국어 표현도 있으리라 본다.)
또한 웨이파인딩은 어떤 공간에서 방문자들이 최적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동 방식을 설계하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건물 내 동선이 웨이파인딩 디자인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넓게는 수천만명의 방문자를 고려하는 도시의 범주를 생각할 수도 있다. 좋은 사례로 2007년 런던 교통국Transpor for Londond은 읽기 쉬운 런던Legible London 프로젝트를 도입하여 시범 사업 이후 2010년 부터 런던 32개 자치구 전역의 1,500개가 넘는 표지판을 일관성 있고 정교하게 디자인했고, 현재는 3,000개까지 확장됐다. 실제로 길을 잃는 사람이 60%가 감소했고, 보행자 이동 시간이 16% 단축 개선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포용적인 웨이파인딩은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목적대로 이동하는 웨이파인딩을 설계하기 위해 고려해야할 사항을 알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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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시내를 다니다 보면 일관된 조형의 사인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다. ©Applied Information Gro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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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방향을 인식하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동하거나 공간을 누빌 수 있도록 한다. 공간을 누빈다고 표현한 것은, 방문자가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 아닌 불특정 관람이 목적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뮤지엄에서는 정교하게 길을 찾을 수 있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들이 약간은 길을 잃도록 만들기도 한다.
웨이파인딩을 보통은 시각적 장치로만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공간을 안내하는 데 그래픽 표지판만이 전부라면 시각적으로 공간을 이해하는 사람만 이곳에 방문한다는 것을 전제하게 된다. 하지만 웨이파인딩은 길을 찾기 위한 모든 방법이다. 단순히 잘 된 그래픽 디자인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공간 안에 시각장애인이 혼자 방문했다면 전시를 관람하거나,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따라서 한 사용자가 완전하게 공간 안에서 혼자 다닐 수 있기 위해 다양한 길 안내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청각적 신호나 촉각적 안내 가이드를 통해 시각장애인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웨이파인딩은 모든 감각을 활용하여 모든 사용자가 독립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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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길을 찾아갈 수 없다면 매번 누군가에게 의존해야할 것이다. ©Bernard Herm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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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전맹 시각장애인이라면 촉각과 청각을 정보를 받아들이는 주요 수단으로 사용한다. 청각장애인이라면 시각정보와 촉각정보가 중요한 수단이 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은 시청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보가 전달되는 디지털 스크린이나 인쇄물 위치의 높이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공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다양한 요구와 능력의 스펙트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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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촉각과 청각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CD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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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예측 불가능한 환경적인 변수에 대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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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적 변수는 항상 존재한다. 예를 들어 건물 입구까지 유도블록이 잘 깔려 있는데, 눈이 많이 내려서 유도블록을 가리는 경우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입구까지 이동할 수 있을까? 지난 호에 설명한 핀란드의 오디 도서관에서는 특별히 디자인된 사운드 비콘(Sound Beacon)을 활용하여 위치에 대한 방향을 알렸다. 또한, 어떤 공간 안에 특별한 이벤트가 열려서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면 소음으로 인해 청각 정보가 뚜렷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이동에 제약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동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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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유도블록이 깔려있는데 눈으로 가득 덮힌다면 시각장애인이 흰지팡이를 사용해 길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CD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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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대피와 안전과 관련된 길 찾기는 우선적으로
실내 공간의 경우 위급 상황 시 이동 방법에 대해 반드시 대안을 마련한다. 가령 화재가 발생했을 시 사이렌을 못 듣는 경우 어떻게 탈출 정보와 상황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안내할 것인가? 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의 경우 현재 위치에서 비상구까지 어떻게 이동할 수 있는가? 안전과 관련된 사항은 각자의 위치에서 누구나, 즉시 대피할 수 있는 길 찾기 시스템이 필요하다. 만약 공간 내에 디지털 스크린이 많이 있다면, 위급 상황 발생 시 모든 디지털 스크린에서 각각의 대피 흐름과 안내 방향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월드와이드웹 표준화 기구 W3C에서는 안전과 관련해서는 텍스트를 읽지 않고서도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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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 경로에 대한 길 찾기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Ob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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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인지력 차이를 고려한 식별성
사람의 감각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인지력의 차이도 있음을 고려한다.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공간 안에 왔을 때 방향안내나 정보에 대한 식별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또는 시각적 인지력뿐 아니라 지적 인지력을 고려했을 때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실내에서 자주 쓰이는 공간 지도를 보고 이 공간의 구조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27%가 어떤 형태의 장애를 가지고 살고 있는데 그 중 약 13%는 집중력, 기억력, 결정의 어려움 등 인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방향과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직관적인 그래픽이 필요한데, 이 중 색채와 조형은 직관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조형적으로 픽토그램은 사람들의 경험에 비추어 익숙한 형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 말뫼 도서관에서는 말뫼 시내에서 공용으로 쓰는 쓰레기통 관련 심벌을 도서관 내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했다. 색상의 명도는 국제 표준인 WCAG(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 이하 WCAG) 2.1 기준에 따르면, 일반 텍스트는 최소 4.5:1의 명도 대비 비율을, 대형 텍스트는 최소 3:1의 비율을 갖추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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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시립도서관의 쓰레기통 심볼은 인근 지역 어디에서나 똑같이 볼 수 있는 조형을 사용했다. ©Malmö City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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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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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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