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SV <도서관:포용적 도서관의 요소들>호를 만들면서 인터뷰를 진행한 핀란드 오디Oodi 도서관은 사운드 디자인, 소리가 전달하는 감각의 확장
최근 MSV <도서관:포용적 도서관의 요소들>호를 만들면서 인터뷰를 진행한 핀란드 오디Oodi 도서관은 2018년 개관한 이래 1천만 명 이상의 방문자를 기록한 헬싱키의 새로운 랜드마크다. 또한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에서 수여하는 2019년 올해의 공공 도서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는 2024년 기준으로 거주 인구가 약 67만 명인데, 무려 38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오디도서관의 정보 전문가Information Specialist 에바 사무Eeva Samu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특히 사운드 디자인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
|
|
핀란드 건축회사 ALA가 2013년 공모 설계에서 선정되어 진행한 오디 도서관은 건축물 전체를 가로지르는 유선형의 곡선과 나무 패널, 자연광을 공간 안에 받아들이는 넓은 창을 조화롭게 디자인하여 핀란드 건축의 위용을 드러낸다. Photo: Kuvio |
|
|
Oodi <the library of a new era>라는 담대한 표현답게, 영상을 보면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번 뉴스레터에서 이야기하게 될 자연광과 공간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 등이 잘 나와있다. |
|
|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길을 찾아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촉각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흰 지팡이를 사용하여 보도에 있는 유도블록의 패턴을 느끼며 따라간다.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발로 유도블록의 패턴을 감지하면서 경로를 따라간다. 그러나 핀란드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눈으로 완전히 보도가 덮히면 시각장애인은 유도블록을 감지하기 어려워진다.
오디 도서관은 개관하면서 남쪽 입구에 *사운드 비콘Sound Beacon을 설치했지만, 오히려 너무 시끄럽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에바 사무에 의하면, 여성 합창단이 다 같이 큰 소리로 공연하는 예술 작품 같아서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롭게 변경된 사운드를 들어보자. 오디 도서관 접근성 페이지를 클릭하면 중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콘은 무선 통신 기술을 이용해 특정 위치의 정보를 송신하는 장치다. 여기서 사운드 비콘이란 여러가지 비콘 중 소리로 신호를 전달하는 장치로, 소리를 통해 위치와 방향을 알린다. 출입구 근처에 설치된 비콘은 소리를 내어 시각장애인들이 해당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
|
|
오디 도서관 남쪽입구. 들어가는 출입문 쪽에 비콘이 설치되어 있다. 다른 영상을 찾아보면, 입구까지 들어가는 데 정확하게 길에 선형 유도블록이 깔려져 있다. Photo: Kuvio |
|
|
새로운 사운드 비콘은 핀란드의 사운드 디자이너 아키 파이바린네Aki Päivärinne가 디자인했으며 마이크로 콜라주micro collage 기법을 사용했다. 마이크로 콜라주는 영어 이름 그대로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작은 단위의 소리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방법이다. 마아일마쿠오로Maailma-kuoro 합창단의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심지어 솔방울 다루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마찰음 등을 조합했다.
도서관 입구 사운드 비콘의 소리에서 중요한 점은 뭘까? 오디 도서관에서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경쾌함을 전달하고자 했다. 만약 이곳이 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간이라면 사운드 비콘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다른 음을 전달했을 것이다. 또한 주변의 소음과 구별할 수도 있어야 하되, 도서관 이용자들을 산만하게 하는 방해 요소가 되어서도 안된다. 추가적으로 보청기를 착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야 한다.
아키 파이바린네는 이런 소리들이 심리음향학 관점psycho-acoustic perspective에서 구성되었다고 말한다. 심리음향학은 소리와 인간의 청각 그리고 심리적 반응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예를 들어 소리의 높낮이, 음색 등을 어떻게 사람들이 인지하는지 또는 특정 소리가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오디 도서관의 사운드 비콘은 방향을 정확하게 안내해야 하는 기능적인 제품으로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음향을 디자인했다. 실제로 들어보면 음향에 반복적이면서도 경쾌한 박자가 지속되어 흥을 돋군다. 오디도서관 홈페이지에서도 새로운 사운드 비콘의 신나는 소리를 이용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오디 도서관으로 진입하는 문은 정문, 남쪽, 북쪽 세 군데가 있는데, 위의 비콘이 설치된 구역은 앞서 말했듯이 남쪽 입구이다. 오디 도서관의 접근성 페이지를 살펴보면 출입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가 마련되어 있고, 사운드 비콘이 설치된 곳은 남쪽 입구임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출입’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공간 안으로 초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상세한 안내를 하는 점이 인상 깊다. 무엇보다 이런 비콘 디자인이 또한 아키 파이바린네 한 사람의 작품이라기 보다 핀란드 내 시각장애인 협회 당사자들과 함께 사용자 경험을 분석하며 진행했다는 점, 그리고 기존 사운드 비콘에 대한 불편사항을 도서관 측에 전달했을 때 기꺼이 심혈을 기울여 재설계 했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한다.
|
|
|
주변을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자연광
이번에는 반대로 오디 도서관에서 시각으로 공간을 이해하는 부분을 살펴보자. 우리는 시각과 청각을 통해 대부분의 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만약 청각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시각적인 정보가 전적으로 중요해진다. 엘리베이터에 갇히거나 핸드폰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낯선 곳에 고립된다면, 자전거와 인도가 혼용된 보도에서 자전거 벨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실내 공간에서 다들 황급히 소리를 듣고 대피하는데 뒤늦게야 알아차린다면, 안전상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
|
|
오디도서관 3층은 4단의 낮은 서가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Photo: Kuvio |
|
|
이러한 이유로 위급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오디 도서관은 이러한 상황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중요한 이용자로 고려했다. 사실 공간 안에 머무는 사람 중 중요하고 안 중요한 차이가 있을까? 일단 공간 안에 들어왔다면 모든 사람은 안전해야 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비상시 도서관 내 모든 디지털 게시판에 문자 정보와 수어가 동시에 제공된다. |
|
|
잠깐 데프스페이스의 원칙 중 감각 도달 범위Sensory Reach의 원칙을 확인해보자. 감각 도달 범위란,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더 멀리 볼 수 있다'라는 말은 '시각 도달 범위가 넓어졌다'라는 말과 같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을 허물거나 막혀 있던 복도에 투명한 유리창을 냈다고 상상해보자. 시야가 훨씬 넓어져 멀리 있는 물체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데프스페이스 디자인의 목적은 이처럼 각종 단서를 이용해 감각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360도까지 넓히는 데 있다.MSV 4 <안전> |
|
|
또한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친화적인 공간은 시각적으로 주변을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MSV 4호에서 소개했던 한셀바우먼의 데프스페이스deafspace 원칙 중 넓은 시각적 도달 범위Sensory Reach를 통해 주변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주변 상황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다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내가 최대한 넓게 공간 안의 상황을 눈으로 이해하려면 어떤 환경이어야 할까? 눈앞에 가려지는 것들이 없어야 하고, 혹은 내가 공간을 조망하기 좋은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도서관의 서가는 빽빽하게 쌓여 있어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내 앞이나 옆에 책장만 보일 뿐이다. 반면, 오디 도서관의 3층 열람실은 4단의 낮은 서가로 구성되어 있고, 경사진 공간이 있어 3층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서가 간 배치도 넓기 때문에 어린이이거나 저신장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양옆의 시야가 잘 확보된다.
|
|
|
도서관 한 쪽에 경사진 구역에서는 3층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시각적 도달 범위가 충족된다. Photo: Kuvio |
|
|
자연광은 인공조명보다 눈의 피로도를 줄여준다. 또한 손의 움직임과 얼굴의 표정이 더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소통이 훨씬 용이하다. 넓고 높은 유리창은 자연광이 실내로 최대한 유입될 수 있게 해 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편리함을 준다. 마지막으로, 나선형 계단은 장식적인 요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널리스트이자 농인인 카리나 후비넨Kaarina Huovinen은 오디 도서관 내 나선형 계단 덕분에 위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어서 좋다고 강조한다.
|
|
|
자연광을 한껏 받아들이는 넓은 창은 수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에게 좋다. Photo: Kuvio |
|
|
나선형 계단은 위 아래에 이동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잘 확인할 수 있다. Photo: Tuomas Uusheimo |
|
|
마무리
앞서 말한 사운드 비콘의 설계 과정을 알게 되면 “아니 도서관에서 이렇게까지?”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만약 어떤 공간에 대한 베리어프리 인증을 할 때 사운드 비콘 설치가 필수적인 점수 획득 요건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사운드 비콘 설치'를 했다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다. 실제로도 베리어프리 인증은 도면을 가지고 진행하거나 기능상의 정상 작동 여부로 판명하지 않는가?
하지만 사람의 경험은 계산되지 않는다. 어떤 수치와 정량적인 것들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소리는 가장 중요한 정보 전달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디 도서관에서는 이들에게 최상의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서 비콘의 음향을 세밀하게 디자인했다. 특히 들어가는 입구가 가진 심리적 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 공간에서 이용자가 처음 맞닥뜨리는 곳이 곧 출입구인데, 들어가면서 이런 경쾌한 사운드를 들으며 들어가는 시각장애인에게 이 공간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당신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이용자입니다"라는 환대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
|
|
*내부 프로젝트 사정으로 3주 연속으로 발송 못 드린 점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가급적 매주 양질의 콘텐츠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
변화를 만드는 인사이트. MSV의 다른 글도 읽어보세요. |
|
|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
|
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