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보라는 이름은 '함께' 또는 '동반'을 의미하는 스웨덴어 단어 "sällskap"과 '거주'를 의미하는 " 공통점 발견하고 연결하기
중동의 난민 청소년들과 스웨덴의 70세 이상 어르신, 두 그룹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문화, 언어도 다를 것이고 연령과 외모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휠체어 이용 장애인과 영유아 동반자의 공통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상대적으로 더 연상하기 쉽다. 바퀴가 달린 이동 수단을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계단만 있는 건물은 출입이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그런데 건물의 출입구가 경사로로 되어 있으면 경사로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진입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영유아 동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경사로가 공통의 물리적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이 된다.
포용적 디자인은 대상 속에 있는 공통점을 찾아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로 기업에서 프로젝트를 의뢰받게 되면 장애인 또는 고연령 어르신이 맞닥뜨리는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의 장벽을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확장시켜 비장애인, 젊은 층이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시해달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들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 공통점은 후자로 언급한 경사로처럼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난민 청소년과 어르신들처럼 당장 떠오르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스웨덴의 공유 주거 프로젝트 셀보SällBo는 연령과 국적은 다르지만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공통적인 심리를 해결해 나가는 소셜 프로젝트다. MSV5호 시니어와 작년 뉴스레터에서 다루었지만 새로운 독자들을 위해 소개한다.
|
|
|
게임 룸에서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는 모습 ©Benoit Derrier, BBC |
|
|
셀보 프로젝트에서 배우는 포용적 커뮤니티 디자인 |
|
|
2015년 10월 459명이 난민 청소년들이 부모 없이 스웨덴 헬싱보리 Helsingborg에 도착했다. 소위 유럽 난민 사태라고 불릴 정도로 시리아 내전 피해자를 비롯해 중동 지역에서 유럽으로 수백만 명의 난민들이 이주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에서도 난민들이 얼마나 도착할지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다가, 스웨덴 헬싱보리는 항구도시라 선박을 통해 들어오는 난민들의 숫자가 많았다. 당시 헬싱보리에는 미성년자 보호소가 네 곳이 있었는데, 이 청소년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떻게 이들을 수용할 것인가? 셀보(SällBo) 프로젝트는 이런 상황에서 시작했다. 셀보라는 이름은 '함께' 또는 '동반'을 의미하는 스웨덴어 단어 "sällskap"과 '거주'를 의미하는 "bo"를 결합한 것으로, 서로 다른 세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면서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는 통합적인 환경을 구축한다는 목표로 지어졌다.
헬싱보리시의 공공 주택 업체인 헬싱보리 셈 Helsingborgshem은 당시에 70세 이상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오래된 고령자 전용 주택을 리모델링하려고 계획 중이었는데, 난민 사태 대응을 위해 리모델링을 중단하고 1~4층까지의 방을 난민 청소년들을 위해 내어놓았다. 원래 거주하시던 어르신들은 어땠을까? 갑자기 중동에서 온 100명이 넘는 청소년들에게 문화나 언어나 여러 가지 맥락에서 동질감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심지어 밤이면 베란다나 아파트 안에서 담배를 피워 화재 소동이 나서 아파트 건물 내 어르신들이 상당수 대피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스웨덴 언론도 난민 청소년들이 스웨덴에 입국하고 보호소에서 갈등을 일으키거나 문제행동을 한 일들을 주로 보도했다. 여러가지로 조치가 필요한 상황에, 셀보의 프로젝트 매니저 드라가나 쿠로빅은 Dragana Curovic은 어르신들과 대화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외로움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손주들이 있었지만 가족이 방문하는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다른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다른 연령대 사람들과 접촉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
|
|
"Man blir som man bor"는 스웨덴어로 "사람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 따라 변한다" 또는 "사는 곳이 사람을 만든다"는 의미다. 헬싱보리셈 홈페이지에서 셀보를 소개하고 있다.©Helsingborgshem |
|
|
한편 난민 청소년들을 부모가 없는 외로움과, 생활비를 관리하거나, 빨래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로 생활에 대한 도움이 필요했다. 또 스웨덴에서 정착하며 살기 위해서는 스웨덴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중요했다. 이 지점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결핍과 필요를 보완해보기로 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어르신들에게 난민 청소년들이 대화 상대가 될뿐더러, 어르신들이 가르치고 보살펴주는 그런 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
|
|
셀보 아파트의 전경 ©Helsingborgshem |
|
|
여기에서 셀보 프로젝트 팀은 어르신들과 난민 청소년 두 그룹 외에, 스웨덴에서 태어나고 자란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청년들이 세 번째 그룹이 되어 교두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 역시 사회적으로 고립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SNS 상에서 더 멋지고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여주려고 하지만, 실제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없었다. 이들이 셀보에 오면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분들과 함께 지낼 수 있고, 어르신들이 고민 상담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셀보 프로젝트 팀은 아파트 공간 안에 거주자를 추가로 모집했고, 결과적으로 세 그룹이 아파트 안에 모여서 살게 되었다. 이런 과정은 세 그룹과 수차례 회의를 거치고 아이디어를 확인하여 진행됐다.
그 후 헬싱보리셈은 셀보의 약 3년간에 걸친 파일럿 프로젝트 기간을 거쳐 완전한 해결책으로 이러한 공동 주거 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거주자 설문조사 결과도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전체 세입자의 82%가 응답한 설문조사에서 87%는 셀보의 컨셉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했고, 나머지 13%는 좋았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100%가 만족한 셈이다. 한 거주자는 진정한 가족이 생겼다고 말한다. |
|
|
우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드라가나 쿠로빅과 세입자가 공동 주거 공간을 둘러보는 모습 ©Emil Langvad |
|
|
첫째, 공통의 심리적 욕구 파악하기 고립감, 외로움과 같은 심리적 욕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전혀 유사한 것이 없을 것 같았던 집단을 연결하여 교류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준 것이 흥미로운 접근이다. 이혼이나 사별로 인해 혼자 사는 어르신, 보호자 없이 낯선 이국 땅에 들어온 난민 청소년, 19세가 되면 집을 떠나는 게 보통인 스웨덴 청년들 이 세 그룹이 가지고 있는 연결감에 대한 욕구에 주목했다. 보통은 동일한 연령대나 취향으로 묶는 코하우징이 많이 있지만 완전히 다른 연령대를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 주체인 헬싱보리셈도 실험이라는 형태로 3년을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이런 심리적 욕구에 대한 파악은 단번에 떠올린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여러 번의 그룹별 대화를 통해 진행됐다 |
|
|
주방, 식당, 로비, 아틀리에, 도서관 등 다양한 공용 공간이 있는 1층. 파랑색은 거주 공간이다. © Helsingborgshem |
|
|
이를 위해 공동 사용 공간을 마련했는데, 1층에는 공동 거실과 다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층마다 세 개의 공동 공간이 있다. 아파트 내 요가나 헬스를 할 수 있는 시설, 퍼즐 게임을 할 수 있는 방, 도서관, 공예 활동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등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거주자 간 교제 의무 조항이다. 주당 최소 2시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다른 거주자와 교류해야 한다. 각자 성격이나, 사회적 배경, 가치관 등이 다르다 보니 어울리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의무를 약간의 핑계로 삼아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이걸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퇴소당하는 일은 없지만 대부분은 잘 지켜진다고 한다. 내부적인 규약이 오히려 약간의 수줍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성을 부여한다. |
|
|
일상적인 상호작용이 부족한 노인 거주자의 삶의 질 개선뿐 아니라, 청년 세입자들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는 공간
“남편이 1년 반 전에 세상을 떠난 후 너무 외로웠어요... 침묵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고, 며칠 동안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배우자와의 사별 등 여러 이유로 연금을 수령하며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적 목표였지만, 청년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역 개발 컨설팅 회사 WSP가 2019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8세~34세 스웨덴인 10명 중 거의 8명이 외로움을 자주 또는 가끔 느낀다고 대답했다. 이는 오히려 전체 연령 평균인 10명 중 약 6명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참고로 서구권에서는 대부분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는 것이 보통이고 Eurostat의 수치에 따르면 집을 떠나는 EU 평균 연령은 26세인데, 스웨덴은 무려 18~19세로 가장 어린 나이에 독립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스웨덴에서는 외로움과 관련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셀보의 공동주거 모델이 모든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대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세대 간 갈등이 부각되고 있는 시대에 어르신과 청년을 잇는 세대 통합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
|
변화를 만드는 인사이트. MSV의 다른 글도 읽어보세요. |
|
|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
|
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