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은 모든 사람이 제품, 서비스, 환경 또는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한국어로 '-성'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어쩌면 접근성이라는 단어는 조금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접근'이라는 단어도 우리가 대화하며 자주 쓰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에서 접속, 접근, 이용이라는 의미의 access를 생각해보면 접근성은 서구권에서 훨씬 친숙하게 쓰인다고도 볼 수 있겠다. "너 어제 홈페이지에 접근했니?"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도 "Did you access the hompage?"는 조금 더 편안하게 쓰인다.
접근성은 어떤 정도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혹은 '접근성이 높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접근성이 높다"는 것은 맥락에 따라 다르지만 장애인, 고연령 어르신, 정보 소외 계층 등 많은 사람들이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접근성은 주로 계단, 경사로 등과 같은 물리적인 요소들로 여겨져 왔다. 이후 디지털 기반의 현대 사회에서 접근성은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되어 웹이나 앱에서의 접근 가능한 정도나 디지털 매체 전반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아래 BBC의 '접근성 우선 선언문'을 살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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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ibility First Commitment
We need a BBC that is accessible for all, where no one is excluded. However, we know that this isn’t the case, and that disabled people in particular have faced significant barriers. We will continue to focus on how we can better reach, recruit and retain disabled talent by reviewing processes, tackling barriers and building an accessible and welcoming culture and environment.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BBC를 만들어야 하며, 그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으며, 특히 장애인들이 상당한 장벽에 직면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접근 방법을 찾고, 장애인 인재를 더 많이 채용하고 유지하기 위해 프로세스를 검토하고, 장벽을 해결하며, 접근 가능하고 환영받는 문화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할 것입니다. - B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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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접근성 우선 선언문'을 살펴보면 접근성이 중요한 이유와 방향에 대해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웬만한 기업이나 기관 이름 뒤에 accessibility를 붙여보면 아래와 같이 별도의 페이지로 그 조직의 접근성 정책과 방향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한 페이지를 볼 수 있다. 접근성이 얼마나 중요한 키워드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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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접근성 페이지 ©Microsof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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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회적 접근성Social Accessibility도 들어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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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설명하게 될 스웨덴 도서관의 접근성 지침인 <A Library Without Obstacles> 에서는 사회적 접근성을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Malmö City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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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회적 접근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금은 생소할 수 있다. 개념을 설명하는 주체마다 사회적 접근성에 대해 조금씩 다른 관점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소셜 Social이란 단어에 공공성을 더 부여한다면 사회적 접근성이란 어떤 공공의 서비스나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척도를 의미한다. 또한 관계 중심적인 요소를 더 부각시킨다면 사회적 접근성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나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공통적으로 종합할 때 사회적 접근성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참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이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모든 사용자가 차별 없이 소통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는 공공장소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회적 인프라 등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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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hello to everyone
누구에게나 인사를 건네는 것의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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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터뷰를 진행한 스웨데 말뫼 도서관Malmö City Library 접근성 스페셜리스트이자 도서관 가이드라인 <A Library Without Obstacles>을 작성한 카린 라르손 Karin Larrson 은 사회적 접근성의 중요함에 대해 언급하며, 방문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on their level'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가이드라인의 “Having a good conversation every time”이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첫 시작을 환대에 초점 맞춘다. 누구와 언제든지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도서관 사서, 운영자들의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를 전제한다. 첫째는 모두가 다르다는 것. 둘째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관점에서 존중respect하면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나 심리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사고나 불화 등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 눈을 마주치는 행동을 회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인지 장애가 있는 사람의 경우 대화하는 것보다 종이에 쓰거나 그림으로 소통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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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달력Calender of light로 불리는 말뫼 도서관 신관은 1997년 덴마크 건축가 헤닝 라슨Henning Larsen이 지었고, 국제 도서관 협회 연맹 IFLA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12곳 중 한 군데로 선정되었다. ©architectmagaz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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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왼쪽이 1946년 자리 잡은 말뫼 도서관이고 가운데와, 우측이 1997년 새롭게 완공된 건물이다. 구 건물과 신 건물을 잇는다. ©Johan Kal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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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은 가이드를 계속해서 업데이트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받은 버전은 2.1 버전이었는데, 온라인으로 검색하면 2.0 버전을 다운받아 볼 수 있다. ©Malmö City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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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것이 사회적 접근성을 높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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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적 접근성을 높이는 데 환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할까? 이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갈 때마다 친절하게 내 기분을 물어보기도 하고 나를 기억해 주는 안내원이 있는 병원과, 쳐다보지도 않고 접수만 대충 받는 병원. 둘 중 어떤 곳을 더 가고 싶은가? 단연코 전자다. 이는 이동 수단도 마찬가지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버스를 타고 내리는 데 버스 기사나 승객들이 당연하게 기다리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환경과 "왜 이렇게 늦게 타고 내리냐"라며 면박을 주는 승객들이 있는 환경 중 어떤 곳의 장애인들이 버스를 많이 타겠는가? 역시나 전자다. 물리적인 접근성이 조금은 부족하더라도(절대적으로 진입이 불가능한 공간은 제외다) 내가 환영받는 공간이라면 언제든 가고 싶기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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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
만나는 첫 지점이 중요하다
사람이 대면 상황에서 건네는 말 한 마마디와 제스처는 표정, 목소리,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환대에서 사람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꼭 사람의 존재만이 환영받는 공간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나는 최초의 터치포인트(First Touch-point), 즉 사용자와 어떤 제품, 서비스, 공간의 경험에서 만나게 되는 첫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접점에서 경험이 긍정적이면 사용자는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심리적으로도 안정된다. 첫 접점은 여러 언어로 적혀진 안내 메시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라면 화장실과 이동 동선을 아주 명확하게 안내하는 사인, 인적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부담 없이 연락 달라는 안내 보드일 수도 있다. 정답은 없지만 아래와 같은 문구는 어떨까?
"이곳은 누구나 환영하는 공간입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고, 만약 직원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아래 연락처로 전화를 주세요. 지금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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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병수 미션잇 대표
변화를 만드는 디자이너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디자인의 가치는 심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사고의 툴이라고 믿는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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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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