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하는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작년 MSV 도서관호를 만들며, 또 다양한 환대하는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작년 MSV 도서관호를 만들며, 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반복해서 이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공간에 갔을 때 ‘환대 받는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걸까.
헬싱키와 스톡홀름 거리에서 돌아다니면서 내가 맞닥뜨린 아시아계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뮤지엄에서는 더욱 드물었다. 어떻게 보면 신체적 특징만으로도 자연스레 주목을 받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또 나는 상대방의 말을 100% 알아들을 수는 없으니 청각적으로 제약이 생기고, 내 의사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으니 언어적으로 중복적인 제약을 경험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나 같은 낯선 이방인, 특히 아시아계 유색인종이 굉장히 드문 이곳에서는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또는 무엇보다 내가 이 공간과 사회에 소속될 수 있는 사람인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물론 나는 잠시 연수를 온 것이니 사회적 소속까지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뮤지엄이라는 이 공간에서 나는 온전히 관람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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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몇 공간에서 따뜻한 환대를 경험했다. 환대를 전하는 요소는 뭘까? 어떤 공간이 환대의 경험을 전달하는가? 사이니지와 안내표지, 포근한 분위기, 언어, 나름대로 환대와 연관된 요소들을 찾으려고 꽤 많은 애를 써봤다. 이런것들이 모두 복합적으로 연관이 있고 환대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뮤지엄에 들어가는 순간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인이시군요.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는 앞에 있는 기기의 5번을 누르시면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A 구역에 있습니다” 라고 AI 시스템이 안내해준다 하더라도, 사람이 주는 환대와 그것을 통해 얻게되는 심리적 안정감은 절대로 넘을 수 없다.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사람에게서 기쁨을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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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 이 3M 귀마개를 전달받았을 때, 신선한 충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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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립미술관의 한 미디어 공간에 들어갔을 때였다. 어두운 공간 안에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영상에서 크고 음산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키가 큰 젊은 남성이 다가오더니 조용히 물건을 하나 건낸다. ‘음? 우리가 물건을 떨어뜨렸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여기는 소리가 크거나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이에요. 필요하시면 귀마개를 착용하세요.”라고 말을 건낸다.
만약 이 공간에 들어가는 입구 한쪽에 차음용 귀마개가 무더기처럼 쌓여 있고 원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가져가면 된다는 안내 문구만 써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기능적으로는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인상은 남지 않았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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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와 관련해 특히 기억에 남는 세 곳이 있다. 스톡홀름의 쿨투후셋Kulturhuset과 국립미술관, 헬싱키의 시립박물관이다.
스톡홀름 센트럴스테이션Stockholm Centralstation 역에서 내려 광장을 가로질러 걷다 보면 복합 문화공간인 쿨투후셋을 마주한다. 이곳은 지하철과 연결된 지상 5층 규모의 대형 복합 공간으로, 극장, 카페, 도서관 등 여러 문화시설이 섞여 있다. 이런 규모의 공간은 대부분 유료 시설로 운영되기 마련이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쿨투후셋의 도서관 이용과 프로그램은 스웨덴 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무료로 운영된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접근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한 구조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 안에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구역이 연령별로 나뉘어져 있다.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 0-9세 사이의 어린이 공간인 룸 푀르 반Rum för barn, 10-13세 사이의 공간인 티오트레톤TioTretton 그리고 14세-25세의 청소년을 위한 공간인 라바Lava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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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각 공간의 들어가는 입구에 담당 사서가 한명씩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입구 바로 앞에 앉아 들어오는 사람을 맞이하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맞추며 안내한다. 0–9세 공간에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년의 금발 여성이 우리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바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0에서 9세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처음 오셨어요?”
처음 방문했다고 하자, 그는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역, 코트를 거는 곳, 화장실 위치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주로 어떤 언어를 사용하세요?"
한국어라고 답하자, 전반적인 서가 배치를 알려주며 대답했다. “안쪽에 들어가시면 한국어로 된 책도 찾으실 수 있어요!” 실제로 안내해준 서가에 가보니 많지는 않았지만, 백희나 작가의 책을 포함한 몇 권의 한국 그림책이 눈에 띄었다.
한 번도 방문해본 적 없는 나라에서 그 나라 안의 어떤 시설을 방문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긴장을 요구한다. 만약 일본이나 중국처럼 문화적으로 익숙한 아시아권이었다면,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유럽의 이 도시는 완전히 낯선 곳이었다. 먼저 편하게 말을 걸고 소개해주는 사서의 이런 자세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꼈다. 따뜻한 시선,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수 있는 적절한 속도의 대화. 그 짧은 인사와 안내에서 ‘이곳은 안심하고 둘러봐도 되는 공간이구나’, ‘나 역시 이 공간 안에 포함될 수 있구나’라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얻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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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오트레톤 들어가는 입구에 역시 담당 사서가 가까운 거리에 상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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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시내 전경과 구 시가지인 감라스탄 지역이 널리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스웨덴 국립미술관은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다. 글 서두에서 이어플러그를 전달해준 안내 직원도 인상깊지만 스튜디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내가 방문했던 거의 모든 뮤지엄과 도서관은 스튜디오 또는 아틀리에라는 이름으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국립미술관의 스튜디오는 1층에 있었는데, 전시를 관람하다가 뒤늦게 스튜디오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4시 45분쯤 도착했다. 5시가 종료시간이라 15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스튜디오를 담당하고 있는 두 명의 상주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와 웃으면서 인사한다. “반가워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참여하시겠어요?” 그는 지금 진행 중인 점토 조형 프로그램을 간단히 설명하며 도구와 가운을 건네주었다. 점토를 손에 쥐고 무엇을 만들어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휠체어를 타고 있던 국립미술관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사진도 찍어주겠다며 인사한다. 오늘 워크숍의 취지와 다른 참여자들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자세히 설명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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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서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하며 먼저 사진을 찍어줬던 국립미술관의 스튜디오 직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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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시립박물관은 시설 자체는 조금 낡은 측면은 있었지만 나이 지긋한 백발의 안내직원이 입구 바로 앞 데스크에서 “Welcome to Helsinki City Museum"이라고 입장하는 우리를 향해 인사를 건냈다. "처음 방문하셨나요? 그렇다면 2층을 먼저 보시는 걸 추천해요. 2층에 있는 체험전시를 보고 1층으로 내려오시면 좋아요." 박물관내 추천 동선과 웃옷을 걸어두는 락커룸으로 친절히 안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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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시립박물관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우리에게 "웰컴" 인사로 맞이했던 직원. 문을 열면 4-5미터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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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접점이란 단순히 처음 마주치는 순간이나, 사이니지 또는 외관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공간 안에서 처음으로 ‘유의미한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 다시 말해 공간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게 작용하는 최초의 경험이 발생하는 접점을 뜻한다. 그 접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당사자와 함께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도서관의 측면 입구에는 A4용지 한 장에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안내 지도가 대충 그려져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거대한 규모의 세련된 도서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안내가 A4용지에 테이프로 이렇게 붙여져 있다니. 나와 동행한 휠체어 이용자에게 그것은 그 공간과의 첫 접점이었다. 화려한 외관 디자인이나 인테리어보다, 안내 지도가 그 공간을 판단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첫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각, 언어, 신체적 특징으로 상당히 구별된 상황에 놓인 나에게 환대의 요소는 침묵의 장벽을 치고 있는 내게 먼저 먼저 다가오는 제스처였다. 혹은 조금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주는 태도 같은 것들이다. 앞서 언급한 세 공간의 공통점은 유의미한 경험이 시작되는 첫 지점에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맞이하는 거리가 가까웠다는 것이다.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자. 첫번째는 입구에 들어갔을 때 안내원까지의 거리가 30미터 가량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다. 이때 이용자는 자연스럽게 주변의 사이니지를 보며 스스로 길을 찾게 된다. 이런 방식이 불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익숙한 공간이라면 혼자 움직이는 편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다만 질문이 필요한 순간에도 안내 데스크가 멀리 보이면, 굳이 다가가 말을 걸기보다는 혼자 해결하려는 쪽을 택하게 된다.
반면 두 번째는 안내 직원이 문 가까운 곳에 위치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이용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경우다. 중요한 것은 그냥 위치만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이용자를 맞이하는 것이다. 몇 마디 형식적인 인사나 사무적인 태도는 의미가 없다. 이용자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듯 충분히 말을 건네고 주고 받는 그 깊이가 중요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길을 찾는 일도, 공간을 이용하는 일도 조금 더 여유롭게 느껴진다. 그 차이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공간을 처음 마주하는 경험에는 분명한 영향을 남긴다.
물론 뮤지엄의 규모에 따라 이렇게 근거리에서 맞이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어디에 배치하느냐는 그 공간이 나에게 얼마나 가까운 장소로 느껴지는지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위치는 곧 선언이다. 그리고 그 선언이 환대하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사람을 어느 위치에 둘 것인가, 사람을 얼마나 투입할 것인가는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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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안내 책자가 모데르나 뮤젯 인포데스크 부스의 가장 첫번째 부분에 위치한 것은 선언적 의미다.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이 가이드를 누구나 한 번씩 보게 된다. 결국 이 공간이 어떤 것을 지향하고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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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오디도서관의 리플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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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환대는 사람의 태도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스웨덴의 모데르나 뮤젯Moderna Museet에서는 접근성 안내 책자가 안내 데스크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뮤지엄이 접근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책자다. 이것은 선언적 의미가 있다.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이 뮤지엄 내에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는지 선언하는 것이다. 이 선언이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는 가까운 위치에 있을 때,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해진다.
헬싱키 오디 도서관에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문구와 모두를 존중한다는 선언이 입구 근처 인포데스크 측면의 벽에 크게 보였다. 또 리플렛의 뒷면에도 이런 내용이 상세히 적혀있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없어도, 이 공간이 어떤 태도로 사람을 맞이하는지 전달한다.
돌아보면 환대는 어떤 장면 하나로 설명되기 어렵다. 사람이 서 있는 위치, 진정성 있는 태도, 말을 건네는 타이밍, 그리고 공간 안에 배치된 선언, 언어와 사이니지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어떤 감각이다. 이 요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지적 부담을 덜고, 심리적 장벽을 낮춘다. 공통적으로는 환대를 경험하도록 시작하는 조건이 가장 첫 지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대는 이후에 덧붙여지는 친절이 아니라 첫 지점에서부터 마련되어야 하는 경험의 조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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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작성을 위한 해외연수는 사회혁신가를 지원하는 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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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I 김병수 미션잇 대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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