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입국, 쫌립쑤어!
캄보디아 입국 | 202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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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인사드립니다. 저희는 지난달 싱가포르 OMF 국제본부 훈련을 마치고 8월 3일 캄보디아에 들어왔습니다. 현지 교회들을 방문하고 집을 구하고 언어를 배우다 보니 정신없이 어느덧 4주가 지났습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프놈펜에서의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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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떼쪼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30년을 치과의사로 섬기고 계신 천천 선교사님과 한국인 선교사님들께서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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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2주 동안 캄보디아에 와본 적 있는 저희조차도 문화충격을 경험했습니다. 중앙선이 없이 역주행으로 달리는 도로, 등을 부딪힐 만큼 덜컹거리는 툭툭(오토바이 택시), 코를 찌르는 매연과 쓰레기 냄새, 식탁과 부엌을 가로지르는 개미군단의 행렬, 걸어 다닐 수 있는 도보가 없는 거리 등등 단기로 방문했을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환경이 저희 앞에 펼쳐졌습니다. 전달드리고 싶은 내용이 많아 아래에 간단하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건강 | 생수를 사서 마시고 외부에서 판매하는 얼음을 먹지 않으며 조심했음에도 2주 차에 38도까지 열이 올랐습니다. 온 가족이 설사와 복통에 시달렸지만 다행히 집을 구한 후 3주 차부터는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집 계약과 이사 | 프놈펜에 도착한지 2주 차 토요일에 드디어 집 계약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들어갔습니다. 꽤 까다로운 집 주인이었지만, 많은 분들의 중보 기도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월세 계약을 맺었습니다. 지난 7월부터 한 달 반 동안 요리를 할 수 없었고, 원룸에 가까운 숙소에서 살다가 드디어 집을 구하니 이제 정착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집은 프놈펜 시내에서 약간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현지인들이 주로 사는 스타일의 집입니다. 주위에 부적과 불상을 거실에 가득 놓은 현지 분들이 살고 있지만, 항상 따뜻하게 인사하면서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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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끼리만 왔다면 이곳에서 도저히 살아남지 못했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도와주는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사진은 OMF 숙소에서 지내다 드디어 집을 구해 이사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홍콩에서 오신 선교사님께서 이사를 도와주셨습니다. |
OMF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가구를 공유합니다. 선교사들끼리 농담으로 허드슨 테일러 시절부터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 먼지 쌓인 가구들을 창고에서 옮겨왔습니다. 못이 튀어나오고 썩고 삐뚤어진 오래된 가구들이지만 희한하게도 저희 눈에는 예쁘기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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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훈련 시작 | 이사 후 3주 차부터 언어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수업과 복습을 포함해 최소 4시간씩 매일 크메르어를 공부합니다. 워낙 인풋이 많아서 쉽지는 않지만, 점점 아는 단어가 들리고 말할 수 있는 문장이 하나씩 늘어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빈이의 학교 적응 | 하빈이는 캄보디아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바로 학교를 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안에서만큼은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빈이가 가끔 한국을 그리워하지만, 학교에서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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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이의 학교 가는 길입니다. 1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학교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지만 캄보디아 대부분의 길이 그렇듯, 도보가 없고 쓰레기가 양 옆에 있어 등교가 쉽지는 않습니다. 몇 주 걸어다니다가 최근 중고 자전거를 구입해서 함께 통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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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30년을 사역하신 선교사님께서 “We are living in the Battlefield.”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영적 전쟁의 땅입니다. 캄보디아 현지인들은 양옆이 쭈욱 붙어 있는 집에 주로 살기에 저희도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집 사이에 껴서 살고 있습니다. 양쪽의 옆집이 모두 현관부터 집안까지 부적과 불상이 가득합니다. 특히 좌측 집은 거실에 번쩍번쩍한 불상들이 한쪽 벽면을 모두 도배해놓은 것이 집 밖에서도 보일 만큼 영적으로 어지러운 상황입니다. 며칠 전 아침에는 옆집 사람들이 저희 집과 그 집 사이에서 부적을 불로 태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저희는 그 집과 연결된 벽면에 말씀을 붙이고 손을 얹어 기도하며 '기도의 벽 The wall of prayer'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집에서 전예진 선교사의 결혼반지를 잃어렸습니다. 그날 새벽에 누군가가 손가락을 자르려고 쫓아오는 악몽을 꾸다가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었는데, 잠결에 기괴한 얼굴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단의 공격이구나, 생각하며 한참을 대적 기도를 하다 일어났는데 그날 아침 신발장에 올려놓은 결혼반지가 없어진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현지인 고용과 언어 연습을 목적으로 짧은 시간 집안일을 도와주는 현지인 도우미가 오시는데, 그분이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날 QT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사람들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될까 봐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습니다 (마 1:19, 우리말 성경)" 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캄보디아는 수치를 당하면 상대에게 몰래 칼을 들고 찾아갈 만큼 강한 명예사회입니다. 저희는 현지인과의 관계와 신뢰를 위해 침묵하며 기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도 끝에 '결혼반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청소하면서 있는지 찾아봐 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남긴 날, 도우미분이 신발 속에서 반지를 찾았습니다. 섣불리 추궁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기도하며 신뢰관계를 지킨 것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이 일로 참으로 사소한 것으로도 사단이 공격하고 있음을, 하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더 크심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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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앞에 부적을 붙여놓은 이웃집의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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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응’은 1975년~1979년 사이 일어난 킬링필드 당시 정글로 탈출해 태국 국경의 난민 수용소에 도착해 살아남았습니다. 가는 길에 너무 지쳐 쓰러졌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마치 지쳐 쓰러진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어다 주었던 것처럼 갑자기 개구리가 뛰어와서 개구리를 잡아먹고 기운을 내어 태국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난민 수용소에서 만난 OMF 선교사 덕분에 하나님을 만나고, 미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만난 프랑스인 남편이 애플의 리서치 디렉터였기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굉장히 부유하게 살 수 있었지만, 어느 날 캄보디아로 돌아와 남쪽에 위치한 까엡Kep이란 마을에 현지인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지역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 선생님인 ‘챤티’의 아버지는 30여 년 전 피살됐습니다. 홀로 남은 어머니가 두 딸과 아직 뱃속에 있었던 챤티를 키우기 위해 매일 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따다가 떨어져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어머니와 뱃속의 아이 중 한 명만 살 수 있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기꺼이 자신의 죽음을 택했습니다. '챤티'는 이 어머니가 매일 올라가던 나무의 이름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챤티는 외로움과 허무함 속에 정글 속에 있는 부모님 무덤 사이에서 매일 울며 잠을 잤던 기억이 있다고 합니다. 네 번의 자살 시도를 했으나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리셨고, 어느 날 한 선교사님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영어를 공부하며 대학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OMF 선교사들을 위한 언어 선생님으로 귀하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언어 선생님인 ‘타’는 킬링필드 시절 10대 초반이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다행히 덤덤한 편이라 일 년 내내 정글에서 뭔지 모를 나뭇잎을 먹으며 버텼지만, 세 명의 형들은 굶주림에 울부짖으며 지쳐 연달아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명의 언어 선생님인 ‘데이비드’는 5살이던 킬링필드 당시 흙을 먹으며 지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선교사들의 선생님입니다. 이들을 통해 OMF 선교사들이 현지 언어를 학습하고, 이들을 통해 수백수천명의 현지인들에게 다시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삶과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저희의 삶을 부끄럽게 합니다. 차마 이들 앞에 무엇을 고난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하늘에서 받게 될 그 상급은 얼마나 놀라운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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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엡Kep 교회에서 '리응'을 만났습니다. 이곳은 킬링필드 당시 정글로 도망쳐 살아남아 크리스천이 된 리응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서 세운 현지 교회입니다. OMF 선교사들이 제자훈련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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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저희의 기도 제목을 공유드립니다. 기도 제목에 업데이트가 있으신 동역자님들은 뷰티풀웍스 카카오톡 채팅창에 기도 제목을 남겨주시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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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 | 캄보디아에 무사히 입국하고 집을 구할 수 있음에 감사! 연달아 6개월 비자를 무사히 받을 수 있음에 감사! 하빈이가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하게 해주심에 감사!
- 언어 훈련을 위해 | 언어의 지혜와 매일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인내를 주셔서 캄보디아(크메르어) 언어 실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 건강을 위해 I 온 가족이 아프지 않고 현지 기후와 음식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 영적 충만함을 위해 I 매일 가정 예배와 기도, 개인 묵상을 통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영적 충만함이 가득하도록
- 적응을 위해 | 캄보디아의 문화에 잘 적응하고, 이곳이 집처럼 느껴질 수 있길. 특히 하빈이가 한국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는데 이곳의 좋은 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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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전예진 선교사가 소속된 한국오엠에프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는 국내 최초의 국제 선교단체로 1980년에 시작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파송된 1,400여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동아시아 19개 필드에서 ‘동아시아의 신속한 복음화’를 위하여 사역 중에 있습니다. 오엠에프의 시작은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1865년 6월 25일 설립한 중국 내지 선교회CIM(China Inland Mission)이며,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중국 본토 선교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1954년 해외 선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동아시아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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