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크론베르크(Kronberg im Taunus)에서 봤던 빵집 간판. 슈니첼 모양을 주인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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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소도시 거닐다 보면 그림으로 된 간판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의미 전달이 가능하도록 텍스트가 없는 직관적인 그림 형태이지만, 주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어딘가가 조금씩 다르죠. 슈니첼이 걸려있는 집은 100년이 넘은 빵집인 경우가 수두룩하고, 장화 그림이 걸려있는 곳은 신발 가게임이 분명합니다. 동그란 안경이 걸린 집은 안경집이고, 책 모양이 있는 집은 오래된 책방이고요.
중세 시대 유럽은 문맹률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가게들이 글이 아닌 그림으로, 혹은 글에 그림을 곁들이는 형태로 간판을 걸었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요즘에는 문맹이라는 단어는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죠. 그러나 여전히 독일 소도시의 작은 골목에는 그림 간판들이 놓여있습니다. 옛것을 그대로 잘 보존하는 독일인들의 성격도 반영되어 있겠지만, 요즘에도 12%라는 낮지 않은 문맹률을 지닌 독일에서 그림 간판은 분명한 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예전의 생활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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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자를 파는 가게. 독일 바이마르(Weimar)에서는 그림 간판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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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팀에 화두가 되는 단어는 문맹과 문해력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조금 먼 단어인 문맹을 실감하게 된 경험때문이었죠.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용자에 대한 고려, 나아가 문해력이 포용적 디자인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되는지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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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에는 평균이 없을지도 모른다 : 다양한 문해력을 고려한 포용적 디자인의 필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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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 l 최근에 시니어 이용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이에서 관찰하다 보니, 우리가 그동안 놓쳤던 중요한 부분이 보였어요. 벽오지에서 만난 분들 중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분들이 상당수 계셨거든요. 제 할머니도 그러셨고요. 정보를 전달할 때 텍스트 기반에만 한정을 짓지 않고,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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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l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특히 문맹 관련해 생각하다보니 문해력도 연장선에서 떠올리게 되는데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변에서 문해력에 대해 많이 듣고 고민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게 꼭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어요. 어르신 분들이 문자 해석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키오스크 같은 기기에서 ‘입력’이나 ‘확인’ 같은 단어조차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시니까요. 시니어분들에게는 텍스트 위주의 정보 전달 외에 다른게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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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l 저는 잠깐 법학 시험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점이 떠올랐어요. LEET라는 게 짧은 시간에 고난이도 문장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시험인데, 그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사실 쉽지 않은 문장들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법이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고맥락 텍스트에 익숙하잖아요. 그 기준으로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일을 하는거죠.
비슷한 경우로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 인적성 시험을 보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데,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어느정도 문장 해석 능력이 높은 분들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런 분들이 제품을 설계하고 서비스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분들 기준에서 서비스가 설계된다면 다양한 사용자 입장에서는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을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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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적성시험 (LEET)를 위해서는 고난이도 문해력이 필요하다.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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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 l 그래서 요즘은 정보 전달에서 '정확한 표현'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발달장애인이나 인지적 어려움을 가진 분들을 고려해서 텍스트만이 아니라 그림이나 상징, 혹은 실제 경험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잖아요. 결국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실제로 그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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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l 맞아요. 그래서 저는 쉬운 글쓰기나 UX 라이터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가 누구에게는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문턱이 되기도 하잖아요. 특히 글자를 천천히 읽는 분들, 혹은 외국인 사용자처럼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 입장에서 보면, 안내 문구 하나하나가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게 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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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 l 정말 중요한 포인트예요. 앞으로 더욱 저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특정 그룹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가 직관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보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 언어, 구조까지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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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l 아이뿐 아니라, 어른과 고연령 세대, 외국인 사용자까지 포함해 모두가 정보를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미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쉬운 언어는 결국 모두에게 필요한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쉬운 언어는 공공의 도구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가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소통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거고요. 지금 나누는 이 대화가 그런 변화의 작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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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디자인의 시작 : 최선보다 최적에 집중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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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ㅣ리서치를 하면서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가 모든 사용자에게 가장 최적화된 형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시니어분들이 키오스크보다 매장에서 직접 주문하는 걸 선호하거나, 앱 대신 콜센터에 전화하는 걸 더 익숙하게 여긴다면요.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가 밀어붙이고 있는 디지털 방식이 모두에게 최선일까? 모든 사용자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전제부터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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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ㅣ 그 말 듣고 떠오른 게 있어요. 예전에 저희 뉴스레터에서도 나왔던 자동차 에어백 이야기인데요. 테스트용 더미가 백인 남성 기준으로 설계되면서, 여성이나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었다는 사례요. 결국 표준 사용자를 너무 좁게 설정하면,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소외되는 구조가 되는 거죠. 디지털 서비스도 마찬가지예요. 문해력이나 기술 사용 능력에 차이가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들은 서비스의 문 앞에서 멈춰버릴 수밖에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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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 ㅣ 그 부분에서 ‘멘탈모델’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니어 사용자분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디지털 기기를 통한 문제 해결 방식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전화는 내가 실수해도 상대방이 도와주니까 안심이 되지만, 키오스크나 앱은 내가 잘못 누르는 순간 모든 게 멈춰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그 차이에서 오는 불안감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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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야구 관람표가 온라인으로 판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표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어르신의 인터뷰. 오랜 시간 즐겨보던 야구 경기였기에 티켓박스에서 구매할 수 있다면 언제든 줄을 서시겠다고 하셨다. ©광주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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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ㅣ며칠 전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가 떠오르네요. 요즘 야구장에 어르신들이 거의 안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넷 예매가 어려워서요. 젊은 사람들은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표를 예매하지 못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 장면이 참 씁쓸했어요. 이게 단순히 ‘디지털을 몰라서’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 가능한 방식이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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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ㅣ그래서 이번에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에서 몇 백 석 정도를 현장 예매 전용 좌석으로 따로 마련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변화가 정말 반가웠어요.
우리는 보통 ‘디지털로 편하게 이용하세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편리함이 누군가에게는 큰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잊기 쉬운 것 같아요. 사용자의 멘탈모델이 다양하다는 걸 인정하고, 선택지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게 더 포용적인 설계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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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ㅣ정말 맞는 말이예요. 저희도 서비스 기획할 때 ‘디지털 퍼스트’만을 생각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돼요. 인지적인 다양성을 고려해 설계를 한다는 건 단지 '표준 외에 추가 옵션을 마련하자’는 문제가 아니고, 처음부터 다양한 사용자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설계해야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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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놓치지 않게, 잘못 던진 공도 능숙하게 잡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 포용적 디자인의 지향점과 닮아있다.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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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마치며,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에 나오는 대화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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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상대는 공이 글러브 안으로 곧장 들어오도록 던져 웬만하면 놓치지 않게 한다. 그가 받는 쪽일 때엔, 아무리 잘못 던진 공도 능숙하게 다 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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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글에 나오는 공을 잘 못 던져도 그걸 착착 받아주는 ‘쓸만한 상대’는 아마도 다양한 사람의 제구법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용자들을 ‘일반적’ 혹은 ‘다수’라는 단어에 한정 짓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포용적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직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도 있고 폴더폰을 쓰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같은 문장을 읽고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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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ㅣ임슬기, 미션잇 콘텐츠 에디터
참여ㅣ김병수, 미션잇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예진, 미션잇 디자인 디렉터
박예지, 미션잇 UX리서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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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잇에서 소외된 곳에 빛을 비춘다는 신념으로, 함께 힘을 더할 팀원을 찾고 있습니다. 소통을 통해 업무를 기획하고 설계하며 빠르게 실행하는 도전을 즐기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합니다.
모집분야 ㅣ 그래픽 디자인 인턴 (에디토리얼) 모집기간 ㅣ 2025. 05. 08 (목) 24:00까지
담당업무 ㅣ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편집 디자인 프로젝트 인사이트 리포트 디자인 SNS 콘텐츠 디자인 등
관심있는 모든 분들을 환영하며,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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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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