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7호를 만들면서 일본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도서관인 이시카와 현립도서관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공공도서관,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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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SV 7호를 동시에 만들면서 일본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공공 도서관인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은 이시카와현(우리나라의 도에 해당) 내 인구 46만 명의 소도시인 가나자와 시에 설립된 곳으로 2022년 7월 개장 이래 5개월 만에 55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주목받았다. 내부의 1층부터 4층까지를 모두 뚫고 서가를 원형으로 배치한 북 콜로세움은 가히 장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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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hikawa prefectural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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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IF 디자인 어워드 공공건축물 부분에서 수상했다 © Ishikawa prefectural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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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MSV 7호는 <도서관:포용적 도서관의 요소들>을 주제로 하는 MSV 시리즈 최초의 협력 프로젝트다. 라이브러리 티티섬, 제 3의 시간 등 국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험적인 도서관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함께 협업으로 제작중에 있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환영받을 수 있는 포용적 도서관은 어떤 요소들을 필요로 하는가? 여기서 '공간'이란 단순히 건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서관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그 안에서 진행하는 활동들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경사로나 점자 블록과 같은 시설적 요소는 물론, 사인 시스템과 같은 그래픽 요소들도 포함 된다. 또한,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유·무형의 프로그램과 서비스도 포용적 공간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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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현립 도서관 담당자에게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설립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경영관리과 사카이 씨는 정부에서 특별히 요구하는 규정 가이드라인이 있지는 않고, 이시카와 현에서 만든 배리어 프리 가이드라인을 준수한다고 했다. 참고로 국내에서도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보면 경사로의 기울기를 18분의 1 이하로 하며, 지형상 부득이한 경우는 12분의 1 이하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답을 해주었는데, "가이드의 수치를 너무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가이드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가이드가 형식적이어서? 물론 가이드도 많은 테스트를 걸쳐서 만든 것이겠지만 결국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드에 나와 있는 정보를 참조하되 현장 상황에 맞춰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래서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은 설계 초기부터 많은 장애 당사자들과 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를 한두 차례로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최적의 조합을 만들었는데, 도서관 내 책장 높이, 사인의 위치, 웹사이트 등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 속에 진행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경사로가 있는 구역의 책장에서 책을 빼고, 잠깐 멈춰서 책을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18분의 1 이하의 경사로 각도가 유효할까? 혹 바닥의 소재는 어떨까? 가이드만 믿고 18분의 1로 각도를 정했는데 알고 보니 최적의 사용자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서 20분의 1이 적합했다면? “미안. 나는 가이드에서 그렇게 하라길래 18분의 1로 진행했어”라는 대답이 과연 디자이너로서, 건축가로서 옳은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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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역의 장애인 당사자들과, 협력을 진행했고, 이러한 테스트에 기반하여 최적의 수치를 직접 찾았다. © Ishikawa prefectural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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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기쁨에 말을 건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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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에 맞춰서 했어요"라는 대답과 함께, 적당한 수준에서 가이드라인을 맞추면 그것으로도 비난할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 나는 사용자에게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역할이자 사명이라 생각한다. 사용자의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말이다.
전맹 시각장애인 건축가 크리스 도우니는 나에게 접근성을 고려하는 디자인이 어떤 차원의 것이 되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45세까지 건축가로서 평탄하게 살던 그는 뇌종양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전맹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도면을 ‘눈으로’ 봐야만 가능한 입장에서 대체 어떻게 건축가의 직무를 수행한단 말인가?
사고로 인해 갑자기 앞이 완전히 안보이게 된 이 일생일대의 사건은 그가 접근성을 고려한 건축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장애인이 되기 이전에는 미국 장애인 법을 고려하여 건축 법규만 의무적으로 맞추는 디자인을 했었다고 한다면, 이후에 그는 공간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진짜 경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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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중심적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촉각과 청각을 통해 그 공간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촉각과 청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묘사력과 그 내용의 깊이는 기존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공간 내에서 소리의 울림까지도 섬세하게 디자인하게 된다. 소리가 반사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적절한 소재는 무엇인지 찾게 된다.
“빌딩과 공원과 도시 여기저기에서, 볼 수 없거나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기쁨에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접근성 디자인은 단순히 접근을 허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긍정적인 행위가 됩니다.” 크리스 도우니, 2021년 MSV2<직업> 인터뷰 중
모든 사람들의 경험에는 ‘아름다움과 기쁨’이 존재한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런데 꽤 많은 서비스 제공자들이 이것을 간과한다. 장애인이니까, 요양 시설에 있으니까, 나이가 너무 많으니까 겉으로 말하지는 않더라도 은연중에 ‘기본만 돼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전제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최상의 경험으로 주어진 시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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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 참여 하는 단계도 디자인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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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포용적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참여다.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머리 속에서만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디자인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어떤 유형의 결과물이지만, 사실 과정 자체도 디자인의 일부다. 당사자 참여가 가능한 영역은 그래픽 디자인 부터, 공간, 제품 컨셉, 디지털 인터페이스, IoT 까지 제한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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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단계에 따라 당사자를 포함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아이디어의 시작부터 함께할 수도 있고, 내부적으로 1차적인 아이디어와 방향성을 정했다면 그것을 토대로 1:1 인터뷰나, 그룹 인터뷰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도 있다. 이미 완성된 프로젝트의 추가적인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면, 사용성 테스트를 포함한 여러 조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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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의 메이크업 경험은 어떨까? 흔히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에 깊이 생각해보는 경험은 매번 새롭다 © 미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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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러한 믿음으로 올해 초 발달 장애인의 특정 그래픽에 대한 이해도를 조사했고, 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 난청인 분들의 패키지 정보에 대한 이해도를 조사했다. 또 시각장애인 사용자의 메이크업 경험을 연구하고, 지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패키지 사용성을 테스트 했다. 전형적인 장애로 여겨지지 않는 숨겨진 장애에 속하는 ADHD, 난독증, 공황장애 당사자들의 경험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참여를 만드는 일은 즐겁다. 최소 1시간에서 많게는 5시간까지 대화를 나눈 적도 있는데, 상대방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경청하고 깊게 이해하는 과정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즐거운 경험이다.
보편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경험 안에 의미있는 배움이 있다. 이런 배움의 자세가 포용적 디자인 프로세스를 시작하기 이전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부디 더 많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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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만드는 인사이트. MSV의 다른 글도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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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병수 미션잇 대표
변화를 만드는 디자이너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디자인의 가치는 심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사고의 툴이라고 믿는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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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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