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MSV 인스타그램에 ADHD, 난독증,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 증상을 가진 분들을 찾는다는 게시글을 올린 적이 있다. 여러 조건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만에 거의 백 명이 되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아 서둘러 모집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열 명 내외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이런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우리가 계속 주목해야 할 이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우리가 인터뷰한 사용자들을 *신경다양한Neurodivergent 사용자라고 지칭한다. 영어로뉴로Neuro는 ‘신경’ 또는 ’ 뇌’를 의미한다. 여기서 신경이 다양하다는 것은 어떤 이슈를 두고 관점이 다양하다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뇌의 작동 방식이 구조적으로 다른 것을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신경이 다양하다보니 사용자들을 공통적으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는 소리에 예민하고, 누군가는 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또 어떤 이는 집중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고, 어떤 이는 하나에 깊이 몰입하다가 주변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실 신경다양성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관점과 논란도 있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사용자들의 인지Cognition와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인지다양성이라는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더 일맥상통하나 뉴로다이버시티라는 단어가 더 빈번히 사용되고 실제 기업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위 용어를 썼으므로 신경다양한 사용자로 지칭하겠다.
“책을 세권 다 읽어야하면 1권을 읽는건 오래걸리는 데 3권을 다 읽는 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끝나요. 한 개에 몰입하기 보다는 여러가지를 함께 바라보는거죠. 장점이 될 때도 있어요.” - ADHD 사용자 인터뷰 중
신경다양한 사용자 중 대표적으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주로 꼽힌다. 우리가 만난 ADHD로 진단을 받은 분들은 대부분 한 가지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진행하는 데 있어 상당히 많은 부분 외부 자극에 의해 집중이 흐트러지거나 그 방향을 잃기도 했다. 한편으로 어떤 부분은 과몰입하는 경향도 있었다. 핸드폰에 갑자기 빠져들어 3-4시간이 금방 지나있던가, 혹은 글을 쓰는데 6시간이 지나버렸다던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과몰입된 상태에서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아 외부적인 어떤 개입이 필요했다. 누군가가 옆구리를 한 번 툭 친다던가, 갑자기 전환이 되는 소리가 나는 식으로 외부적인 전환이 있어야 현재 상태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자폐성 장애를 신경다양한 사용자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다 같지 않겠지만, 우리가 만난 자폐성장애 사용자들은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결정하는 데 평균적으로 시간이 짧은 경향을 보였다. 가령 어떤 콘텐츠를 고를 때 오랜 시간 비교하고 탐색하기보다는 눈에 들어오는 것을 빠르게 결정한다. 또한 다른 메뉴에 들어가 보기보다는 한 화면 내에서 행동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정리하자면, 정보가 너무 분산되어 있지 않고 인터랙션이 단순한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 역시 중요한 신경다양한 사용자다. 여기서 말하는 난독증은 책을 오랫동안 보기 힘들어하는 수준이 아니다. 단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뇌의 정보 처리 방식 자체가 다른 신경 기반의 특성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정보를 정확하게 식별하기 어려울 때, 예를 들어 글이 장황하거나 글자로만 정보가 적혀져 있을 때 어려움을 겪는다. 참고로 이런 식별성 이슈는 난독증 사용자뿐 아니라 저시력 시각장애인도 연관되어 있다. 필기체와 같이 획이 연결되고 복잡한 글꼴보다 고딕체처럼 획이 시각적으로 더 명료하게 구분되는 것이 훨씬 분명하게 인식된다.
신경다양한 사용자들을 고려하는 접근성 요소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접근성을 고려해야 하는가? 신경다양한 사용자들을 위해 어떤 요소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바라봐야 할까? 그 분류가 간단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사용자들의 경험을 종합했을 때 다음과 같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두 가지는 집중력과 이해력(혹은 정보처리능력)이다.
“관심이 자주 바뀌어요. 이걸 하기로 했는데 누가 말을 걸거나, 인기척이 있으면 또 그걸 따라가고요. 해야하는 일이 있는데도 다른 걸 한참 하다가 돌아오고, 이게 자연스러워서 문제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 ADHD 사용자 인터뷰 중
요즘 사람들의 집중력이 짧아졌다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다. 숏츠나 릴스처럼 빠른 속도에 자극이 강한 콘텐츠가 많다보니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된다. 메시지, 광고 팝업이나 알림과 같이 사용자들의 주의를 끄는 요소들은 신경다양한 사용자들의 성향을 더 강화한다. 한편 이해력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능력으로 상황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핵심을 추출하는 과정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인지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다양한 사용자들은 이해력이 떨어지거나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설명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며 행동한다.
이런 역량을 표현할 때, 자칫 집중력이 ‘낮고 높다’, 혹은 이해력이 ‘낮고 높다’로 서열화된 언어를 사용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능력들을 시간적 길이Span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훨씬 더 포용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집중 시간이 짧은 사람과 긴 사람, 정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과 빠른 사람처럼 속도의 차이로 인지적 다양성을 해석하면, 그 자체를 결핍이 아닌 특성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앞서 인터뷰한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용자는 굉장히 빠르게 콘텐츠를 선택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것이 곧 ‘이해 속도가 빠르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이해 속도가 긴 편에 속한다. 인지적 과부하나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빠른 결정이 실제로는 깊이 있게 판단할 수 있는 인지적인 여유가 없을 때, 그 과정을 회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s) 혹은 실행 기능은 행동에 대한 인지 조절이 필요한 일련의 인지 처리과정(cognitive process)을 말한다. 선택한 목표의 달성을 이루게 하는 행동들을 선택하고 주의하는 것이다. Wikipedia
그렇다면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것인가?
'어떻게?'와 관련해서는 무수히 많은 내용을 다룰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어떤 프로세스로 생각해 보면 좋을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접근성을 높이는 관점에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할 때는 우선 사용자의 특성과 그에 따른 성향에 대해 정의하고, 그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지 그 경험의 목표에 대해 설정한 뒤 적용점을 생각해 본다. 아래 예시를 살펴보자.
대상 이해 속도가 긴(혹은 인지 과부하가 잦은) 사용자 성향 성급하게 결정하는 성향(회피적 성향) 목표 "사용자가 인지 과부하가 걸리지 않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적용 결정하거나 선택해야 하는 태스크 디자인(비교 후 선택, 결제 등)에 적용
상황에 따라 성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위에서는 결정하는 것과 관련된 상황이었다면 아래는 정보를 습득하는 상황이다. 접근성 개선이 중점적으로 필요한 상황을 몇 가지 선정하고 대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하고 대화하며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상 이해 속도가 긴(혹은 인지 과부하가 잦은) 사용자 성향 한 가지 방식으로 충분히 정보를 습득하기 어려움 목표 "사용자가 정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적용 홈페이지 UX Writing에 적용 or 콘텐츠 전달 방식에 적용
이처럼 사용자가 정보를 소화하고 반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설계하면 보다 구체적인 접근성 설계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물론 모든 사용자 특성을 시간-속도의 관점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각자의 인지 처리 속도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들이 자신의 속도에 맞춰 최대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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